보편타당(普遍妥當)한 일반적인 상식(常識)이 통하지 않는 불편부당하고 답답한 작금(昨今)의 세상은 자신들의 삶이 바쁘다고, 혹은 자신들의 자리보전과 부귀영달(富貴榮達)을 위하여,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식
혹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잘못을 알면서도 애써 못 본채 덮고, 세상의 부당함과 부정함을 외면한 우리 기성세대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하여, 지금의 이러한 부당하고 불편한 혼란한 사회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며,
보편타당한 일반적인 상식(常識)이 통하는 편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각 가정의 부모들과 이 시대의 스승이라 하는 자(者)들과 이 시대의 어른이라 하는 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진정한 참 역할은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쯤은 큰 잘못을 저질러 자신의 부모나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그 무렵 아이들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나 선생님에게서 싸리나무로 만든
한 자쯤 되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곤 했다. 물론 매를 맞지 않고 자란 아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아이는 크는 동안 무슨 잘못이든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었고, 어떤 잘못을 범하면 부모나 스승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자랐는데,
그것은 보통 "사랑(思朗)의 매" 라 불렀고,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하면 종아리가 아닌, 손바닥이나 얼굴 등, 다른 곳을 매가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도 더러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 매를 맞을 때는 책상 위에 올라가 종아리에 매를 맞곤 했다.
그런데 아무도 왜?! 그것을 회초리라 했으며, 회초리는 왜? 싸리나무로 만드는 것인지…! 회초리로 왜?! 다른 곳이 아닌 종아리를 때리는 것인지, 아무도 그 이유(理由)를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왜?! 책상 위에 올라가 회초리를 맞아야만 하는지…, 또 어떤 잘못을 범한 아이에게 아이의 부모나 스승이 그 아이의 잘못을 가르치려 아이에게 매(梅)를 들기 전,
반드시 그 아이의 부모나 스승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로부터 부모와 스승이 왜?! 먼저 매를 열대 맞았는지, 매는 왜?! 열대를 맞아야 하는지…, 그 이유 또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를 않았다.
그리고 내 의문은 흐르는 세월 따라 유수처럼 흘러갔고, 내 인생(人生)도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덧없이 따라 흘러, 머리가 희끗해지는 불혹(不惑)의 나이를 훌쩍 지나, 우연한 기회에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구(二白五十句)로 이루어진,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자문(千字文)이라 알고 있는 천자문은
하늘의 글이라 하여, 천자문(天字文)이라고 하는데, 그 천자문(天字文) 파자(破字) 공부에 접하는 인연을 맺고, 하늘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기 시작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접어들고 나서야, 그 의미(意味)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됐는데…,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아이를 올바로 가르치려 벌(罰)로 그 아이의 부모나 스승이 매를 들 때, 매로 사용하는 회초리를 싸리나무로 만든 이유는, 매사(每事)를 사리(事理)로 분별하여 언행을 올바르게 하라는, 의미에서 사리(事理) 나무로 회초리를 만든 것이며,
회초리는 문자로는 회초리(回初理)라 하는데, 돌아올 회(回), 처음 초(初), 이치 리(理)의 뜻처럼,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 이전(以前), 네 본연(本然)의 모습, 그때로 다시 돌아오라는 그런 의미의 회초리(回初理)이며, 아이에게
잘못에 대한 벌로 회초리(回初理)를 들 때, 다른 곳이 아닌 종아리를 때렸던 이유는, 종아리는 문자로는 종아리(從我理)라 하는데, 따를 종(從), 나 아(我), 너 아(我), 우리 아(我), 이치 리(理), 다스릴 리(理)의 뜻처럼
나는 매사에 있어 완력이 아닌, 이치(理致)로 다스려 너를 올바르게 이끌고, 너와 나 우리는 매사에 있어 바른 이치를 따른다는 의미의 종아리(從我理)로, 매사(每事)를 사리(事理)로 분별(分別)하여, 올바른 이치를 따르라는
그런 의미의 종아리(從我理)이다. 우리가 흔히 신체의 발이나 다리로 알고 있는 발 족(足), 다리 족(足)은 사는 동안 많은 이치를 배우고 이치로 바르게 펼치고 다니라는 의미의 펼칠 발(發) 족(足), 다리(多理) 족(足), 만족할 족(足)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에 매우 흡족하여 만족스럽다고
표현할 때, 가득 찰 만(滿), 펼칠 발(發) 족(足), 다리(多理) 족(足)의 만족(滿足)이란 문자를 쓰는 이유이며,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바른 이치로 가득 차게 펼쳤기에 매우 흡족하다는 뜻의 만족(滿足)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외출할 때 신는 신발은 문자로는 신발(新發)이라 표현한다. 신발(新發)은 새로울 신(新), 새 신(新), 새롭게 신(新), 펼 발(發), 펼칠 발(發), 드러낼 발(發)이라는 그 문자가 지니는 뜻처럼,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할 때는
늘 이치로 자신의 뜻이나 재능을 바르게 완성하고 바르게 펼치라는 뜻의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전보다는 지금 더 새롭게 출발하라는 의미의 신발이지, 사귀는 여자에게 새 신발을 사주면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간다는 우리가 여담처럼 말하는 그런 뜻의 신발이 아니다.
인류가 낳은 독일 출신의 위대한 과학자 "아인쉬타인" 이 이런 말을 했다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아인쉬타인이 말한 저 뜻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동, 식물은 어제보단 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단 더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에 존재(存在)라는 문자 속에도, 진화(進化)라는 문자 속에도, 바다 해(海), 대양(大洋)이란 문자 속에도, 신발(新發)이란 문자 속에도, 매일(每日)이란 문자 속에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문자 속에도 기본(基本)이란 문자 속에도 아인쉬타인이 말한 것처럼, 저런 뜻을 넣어두고 늘 이치로 바르게 변(變)하라고 후손인 우리에게 누누이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또한 매를 맞을 때 책상 위에 올라가 맞았던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자 공부할 때 책상(冊床)에서 공부(功夫)하는 것이 그 이유기도 하다. 책상은 단지 우리가 책상 위에 책을 놓고, 어떤 지식을 습득하려 공부하는
그런 단순한 의미의 책상이 아니라, 문자의 책상(冊床)에는 '이치로 자신을 힘써 다스리고 이치를 거듭 올바르게 완성한다.'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매를 맞을 때, 책상(冊床) 위에 올라가 매를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벌로 매를 맞을 때 열 대를 맞았던 이유는, 숫자의 열을 뜻하는 열 십(十)에는 자신의 재능을 십 년에 걸쳐 닦고 뜻을 펼치면, 자신이 뜻하는 바를 완성한다는 의미의 완성 십(十)이란 뜻을 지니고 있어,
잘못을 범한 너와, 그런 너를 가르치는 스승, 부모인 나는 매사(每事)에 있어 올바른 이치를 쫓고, 이루고자 하는 자기의 뜻을 바른 이치로 펼쳐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싸리나무(事理羅無)로 만든 회초리(回初理)로, 종아리(從我理)에 매를 열 대를 때리고 맞았던 것이다.
이런 회초리(回初理)를 매(梅)라 불렀던 이유는, 매(梅)를 단순히 매화나무를 뜻하는 매화(梅花) 나무 매(梅)로 흔히들 알고 있지만, 매화나무 매梅에는 '늘 이치로 완성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
회초리(回初理)를 매(梅)라고 불렀던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숲에 자라는 나무를 뜻하는 나무 목(木)은 진리(眞理) 목(木), 이치(理致) 목(木)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나무 목(木)은 완성 십(十)과 사람 인(人), 모을 인(人), 움직일 인(人)이란 문자로 구성이 되어,
자신이 무엇을 완성하려면 그에 대한 정보나 지식, 기술과 기능을 모아야 하고, 그것을 모으려면 자신이 움직여야 모을 수 있고, 정보나 지식, 기술과 기능을 배우고 익혀야지만 자기의 뜻을 완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것이 이치이며, 그것이 진리다. 라는 뜻의 진리(眞理) 목(木), 이치(理致) 목(木)이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 벌(罰)로 아이에게 회초리(回初理)를 들기 전 부모나 스승이 자신들의 종아리에 아이가 때리는 매를 먼저 맞았던 이유는 바로 벌(罰)이라는 문자 속에 그 뜻이 들어있다.
벌(罰)은 사람(四覽)을 일컬을 때 쓰는, 수의 넷을 뜻하는 넉 사(四)로 알고 있는 살필 사(四)와 가르칠 훈(訓)으로 이루어져, 가르치는 것을 살피지 아니한 것이 벌이다. 라는 뜻이다. 즉, 자신의 자식이나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부모가 된 자나, 스승이 된 자들의
도리(道理)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이나 자신의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려 살피지 아니한 것이 벌(罰)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자식이나 제자가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도리에 어긋난 어떠한 잘못을 하게 되면, 아이의 부모나 제자의 스승이 아이나 제자에게 매라는 벌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자신들이 먼저 그 벌(罰)을 받았던 것이며, 스승은 제자의 부모들이 자신의 생업(生業)에 종사하느라, 자신의 자식을 제대로 살펴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기에, 그런 부모들을 대신하여 그 부모의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모 역할을 하였던 것이 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을 대할 때는 마치 자신의 부모를 대하듯 누구나 그렇게 스승을 공경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자식과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의 잘못은 자신의 잘못과도 같으니, 자식이나 제자에게 매를 들기 전, 자신들이 먼저 매를 맞으며, 그 고통을 함께 느꼈던 부모와 스승,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부모나 스승의 종아리에 자신의 손으로 회초리로 매를 열대 때리고, 자신도 종아리에 매를 열대 맞는 고통을 느꼈던…, 자식과 제자!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신의 부모와 스승의 종아리에 매를 때리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서 똑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를 자식이나 제자는 거의 없겠지요. 저도 저의 지나온 삶을 되돌이켜 볼 때마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 이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행여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 이전(以前)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단(但), 어리석고 철없던 그때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때보다는 조금은 더 이치를 깨우친 지금의 사고방식(思考方式)을 가지고 말이지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나온 철없고 어리석던 지난 철없던 시절(時節) 중, 어느 시절로 다시 회초(回初)하고 싶으신지요?!
사람(四覽) 인(人)에서 사람(四覽)의 뜻은 지금 자신이 있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을 살피며 살라고 해서 사람(四覽)이라 하며, 인人의 뜻은 상대에 대한 배려는 많이 하며, 나에 대한 이익과 나에 대한 배려는 조금 취하라는 그런 뜻의 사람 인(人)입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보다 더 못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하지 않으며,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챙기려 한다면, 아직은 철이 조금 덜들은…, 아직 조금은 사람이 덜 된 그런 사람이겠지요.
- 아이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종아리에 매를 맞는 회초리로 쓰이는 싸리나무가 아주 중요하게 쓰인 곳이 또 있는데, 바로 우리의 전통 결혼 예식에서 바로 그 싸리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전통 혼례는 육례(六禮)라 하여, 여섯 가지 순서에 의해 혼례를 치르는 예식이 있는데,
혼례의 육례 중 그 첫 번째 예식인 납채(納采)에서 신랑 측에서 신부 측의 딸을 신부로 맞이하겠다는 청혼 의사와 신랑의 사주를 적은 글을 혼서지(婚書紙)라 하는데,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게 혼서지를 보낼 때, 반으로 가른 싸리나무에 그 혼서지를 끼워서 보냈습니다. 혼서지를 반(半)으로
가른 싸리나무에 끼워 보낸 이유는 바로 싸리나무가 사리(事理)나무를 뜻하기 때문이며, 반(半)으로 가른 싸리나무에 혼서지를 끼운 이유는 매사를 치우침이 없는 사리로 혼사를 분별하고 판단하여 결혼의 승낙 여부를
선택하라는 뜻으로 신부 측에게 반으로 가른 싸리나무에 혼서지를 끼워 보낸 것이며, 신랑 측 또한 신부를 사리로 분별하여 신부로 맞이하고 결혼 후에도 늘 치우침 없는 사리 분별로 매사를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결혼 문화로 자리 잡은 서양의 허니문, 지혜보다는 온갖 상술로 가득한 '서양 허니문' 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전통 혼례에 담겨 있는 뜻, 정말 너무 멋지지 않나요?!
아! 그리고 싸리나무가 쓰인 중요한 곳이 또 있는데, 바로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 때 사용되던,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였습니다. 물론 빗자루는 수수로 만든 빗자루도 있고, 요즘엔 플라스틱으로 만든 빗자루도 있긴 합니다만,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마당을 쓰는 빗자루는 거의 모두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를 사용했습니다. 예전 우리 선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마당을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마당을 청소(淸掃)하면서, 자신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오늘 하루도 사리 분별로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여, 자신의 마음을 하루 동안 깨끗하게 다스리려는
의미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로 마당을 청소하였던 것이며, 누구와 평생을 함께 해로(偕老)하는 결혼을 할 때도, 상대의 부(富)와 지위로 자신의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사리로 분별하여 상대를 선택하라는 의미에서 사리(事理)나무, 즉 싸리나무를 반으로
가른 가지에 혼서지(婚書紙)를 끼워 신부 측에 결혼 승낙 여부 의사를 전달하는데, 싸리나무를 사용했던 것이며, 결혼을 한 후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하여 바른 사람이 되라고 훈계를 할 때는, 지금보다 더욱 사리 분별이 뛰어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싸리나무로 만든 회초리(回初理)로, 아이를 잘못 가르친 자신에게 내리는 벌로 당신의 종아리에 매를 먼저 맞고, 아이의 종아리에 매를 들어 자신의 아이와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 정말 너무 멋지지 않나요!!
- 지금은 한문(漢文)이라 불리는 문자(文字)는 우리의 글로써,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 그 자체이며, 그 정신의 산물이자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뜻 전달이 그 목적입니다. 우리가 쓰는 문자는
변하지 않는 수학의 공식처럼,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호의 집합체이고, 그 기호, 즉 기본 문자마다 각기 뜻이 들어있으며, 문자는 수학의 공식처럼, 문자를 만드는 원칙에 의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과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는 일본의 지원을 받은 친일 한글 학자 주시경과 서울대 교수였던 친일 역사학자 이병도에 의해 철저히 일본의 입맛에 맞게 조작이 된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지요.
또 해방 직후, 우리나라를 점령한 미(美) 군정(軍政)의 포고령 제1호엔, 비록 친일파였다 하더라도 미(美) 군정(軍政)에 협력하면 그 죄를 묻지 않고 중용한다. 는 내용을 실었고, 그 후 친일파(親日派)들은 친미(親美)로 자신들의 신분을 세탁하고
경제, 문화, 교육, 종교, 군사, 정치 등, 우리나라 사회 각 분야의 고위직에 등용이 되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으며, 우리는 해방 이후,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아직도 사회 각 분야에서 혹독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신제(新制)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당시에는 언문(諺文)이라 하여, 천한 사람들이나 쓰는 상말로 여겼다고 하는데, 지금껏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듯이 과연 그랬을까요?!
※ 창제(創制)란 말은 집현전 학자 정인지가 훈민정음의 서문을 쓰면서 창제라 하였고, 훈민정음의 원문에는 신제(新制)라 되어 있습니다. 즉, "새롭게 정리한 글이다."라는 뜻입니다. 언문(諺文)의 언(諺)은 상말 언(諺), 자랑할 안(諺), 용맹스러울 안(諺)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말씀 언(言), 펼칠 언(言), 선비 언(彦)으로 구성이 되어 언문(諺文)이란 선비가 펼치는 뛰어난 글로 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아주 상(上)스러운 글이다. 라는 뜻이 들어있으며, 글월 문(文)은 "근본을 다스린다. 이치로 다스린다. 머리를 다스린다."는 뜻이 들어있어, 언문(諺文)이란,
"이치를 깨우친 선비가 펼치는 아주 뛰어나고 자랑스러운 상스러운 글이다."라는 뜻으로, 상스러운 글, 상(上)스러운 말, 언문(諺文)이라 하였던 것인데, 당시에는 천박한 사람들이나 썼던 글로 그 뜻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은 "문자의 뜻을 백성에게 바르게 가르치는 글이다."라는 뜻입니다. 세종대왕께서는 고조선 단군(檀君)시대의 국민정음(國民正音)이었던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38문자를 모방하시어, 28글자를 만드셨으며,
지금도 우리의 한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거의 다 표현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빼버린 나머지 글자인 4글자를 모두 포함하면, 세상의 어떤 소리나 언어든 모두 우리의 글과 말로서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종 25년(1443년) 12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원안을 만드시고, 세종 27년(1445년) 봄 홍무정운(洪武正韻)을 역훈(譯訓)하기 시작하여. 세종 28년(1446년) 9월 상한(上澣)경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완성 및 반포하시고,
세종 29년(1447년) 9월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완성하시고, 세종 30년(1448년) 11월 동국정운을 반포하셨고, 단종 03년(1455년)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역훈(譯訓)을 완성시키셨다고 합니다.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 라 불리는 문자는 기원전 2181년 고조선 세 번째 단군이신 가륵(嘉勒) 단군 때,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백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우니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명하여,
나라의 글, 국민정음(國民正音)을 새로 만들게 하여, 만든 글이 바로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라는 문자이며, 당시에는 모두 38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라는 문자에는 "문자에 들어있는 뜻을 바르게 깨우쳐, 세상사를 분별하도록 한다." 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실록 25년, 계해(癸亥) 12월에 시월상(十月上), 친제언문(親制言文) 이십팔자(二十八字) 기자방고전(其字倣古篆), 계해년 10월 초, 세종대왕께서는 친히 말글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는 옛 글자.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모방하였다.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與文字), 불상유통不相流通, 나라 말의 음이 중국과 같은 문자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져 그 뜻이 통하지 아니하여, 고(故) 우민(愚民), 유소욕언(有所欲言), 이종부득신기정자(而終不得伸其情者), 다의(多矣), 그런고로, 백성이 하고자 하는, 제 뜻을 바로 실어, 스스로 펴지 못함을 거듭 하야,
여(予) 위차민연(爲此憫然), 신제(新制) 이십팔자(二十八字), 내 이를 민망히 여겨, 스물여덟 자를 새로 정리하여 펴노니, 욕사인인(欲使人人) 이습(易習), 편어일용이便於日用耳 누구나 쉽게 익혀, 하고자 하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날마다 씀에 편케 하고자 함이라.
훈민정음에도 분명 나와 있듯이,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 나라말의 음이 중국과 같은 문자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져 그 뜻이 통하지 아니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문자가 예전부터 중국 글, 한문(漢文)이었다면,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한자불상유통(與漢字不相流通)이라고 해야 했으나, 훈민정음(訓民正音)에는 분명,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 문자라 표기했습니다.
우리가 한자(漢字)라 알고 있는 문자(文字)는 그동안에도 계속 문자라 불리다가 한자(漢字)라 불리어졌던 것은 근세에 들어서야 불리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문(漢文)이라 불리는 문자는 "한(漢)나라"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훨씬 그 이전부터 씌어져 왔습니다.
문자(文字)는 뜻글자이자, 소리글자로 보편타당한 세상의 모든 상대적 이치와 그 역할을 담고 있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문자에 담긴 그 뜻을 바르게 푸는, 음양(陰陽)으로 짝을 이룬 하나의 글, 큰 글(契)이다 하여,
클 한(韓), 모두 한(韓)과 맺을 계(契), 애쓸 계, 맺을 글(契), 이을 글(契) 자(字)를 써서 한글(韓契)이라 불리는 것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우리의 문자를 일본인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 스스로가 자꾸 중국 글인 한문漢文이라 우기며 없애려 하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어는 제대로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제 나라의 국어와 역사는 스스로 축소하여 내팽개치고 오로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영어 만능주의와 일본이 지배하던 식민시절, 일본의 자금 지원을 받은 친일 국어학자인 주시경이 왜곡시켜놓은
훈민정음의 소리글만 우리의 글, 한글이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그들은 대체 무엇이 두려워 문자의 소리글만 우리 글, 한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혹, 소리에 들어있는 문자의 바른 뜻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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