鑛夫의 세상世上 이야기

잊혀진... 잊혀져 가는 우리의!!~~

鑛夫 2013. 8. 16. 17:25

역사歷史, 훈민정음訓民正音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과 우리나라 역사는 일본의 지원을 받은 한글학자 주시경과, 서울대 교수였던 역사학자 이병도에 의해 철저하게 일본의 입맛에 맞게 조작이 된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지요. 우리는 해방 이후, 친일親日을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아직도 사회 각 분야에서 혹독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신제新制하신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언문諺文이라 하여, 당시에는 천한 사람들이나 쓰는 상말로 여겼다고 하는데, 지금껏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듯 과연 그랬을까요?!



※ 창제創制란 말은 집현전 학자 정인지가 훈민정음의 서문을 쓰면서 창제라 하였고, 훈민정음의 원문에는 신제新制라고 되어 있습니다. , "새롭게 정리한 글이다." 라는 뜻입니다.


언문諺文의 상말 언, 자랑할 안, 용맹스러울 안은 말씀 언, 펼칠 언, 선비 언으로 구성이 되어 "선비가 펼치는 뛰어난 글로 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아주 상스러운 글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으며, 글월 문에는 "근본을 다스린다. 이치로 다스린다. 머리를 다스린다." 는 뜻이 들어 있어,

 

언문諺文이란, "선비가 펼치는 뛰어난 글처럼이치를 깨우치게 하는 아주 뛰어나고 자랑스러운 상스러운 글이다." 라는 뜻으로, 상스러운 글, 스러운 말, 언문諺文, 상말이라 하였던 것인데,

 

당시 천박한 사람들이나 쓰던 글이었다는 뜻으로 지금은 그 뜻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뜻은 "문자의 뜻을 백성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는 글이다." 라는 뜻입니다.

 


세종대왕께서는 고조선 단군檀君시대의 국민정음國民正音이었던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38문자를 모방하시어, 28글자를 만드셨으며, 지금도 우리의 한글로 세상의 소리를 거의 표현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빼버린 훈민정음의 나머지 글자 4글자를 모두 포함하면, 세상의 어떤 소리나 언어든 모두 우리의 글과 말로서 표현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세종 25(1443) 12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원안을 만드시고,


세종 27(1445) 봄 홍무정운洪武正韻을 역훈譯訓하기 시작하여.


세종 28(1446) 9월 상한上澣경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완성 및 반포하시고,


세종 29(1447) 9월 동국정운東國正韻을 완성하시고,


세종 30(1448) 11월 동국정운을 반포하셨고,


단종 03(1455)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역훈譯訓을 완성시키셨다고 합니다.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문자는 기원 전, 2181년 고조선 세 번째 단군이신 가륵嘉勒단군 때,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백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을보륵乙普勒박사에게 글을 새로 만들게 명하여,

 

새로 만든 국민정음國民正音이 바로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 문자이며, 당시에는 모두 38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가림토加臨土, 가림다加臨多라는 문자에는 "문자에 들어 있는 뜻을 바르게 깨우쳐, 세상사를 분별하도록 한다." 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실록 25, 계해癸亥 12월에 시월상十月上, 친제언문親制言文 이십팔자二十八字 기자방고전其字倣古篆, 계해년 10월 초, 세종대왕께서는 친히 말 글, 28 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는 옛 글자. 가림토加臨土를 모방하였다.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

나라 말의 음이 중국과 같은 문자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져 그 뜻이 통하지 아니하여,


우민愚民, 유소욕언有所欲言, 이종부득신기정자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다의

그런고로 백성이 하고자 하는 제 뜻을 바로 실어 스스로 펴지 못함을 거듭 하야,


위차민연爲此憫然, 신제新制 이십팔자二十八字

내 이를 민망히 여겨 스물여덟 자를 새로 정리하여 펴노니,


욕사인인欲使人人 이습易習, 편어일용이便於日用耳

누구나 쉽게 익혀 하고자 하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날마다 씀에 편케 하고자 함이라.

 


※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자들에게 편찬토록 하여서 만든 책으로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지칭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옛날부터 부르던 음들을 정리하여 우리의 바른 음을 적은 책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 훈민정음을 예전에는 중국의 전서篆書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설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고조선의 가림토 문자인 국민정음國民正音를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신제新製하였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고 합니다.

 

또한 훈민정음 언해본 초장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듯이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정한 소리 즉, 백성에게 바른 음을 가르치고, 뜻을 바르게 풀이하기 위한 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중국 글한문이라 알고 있는 문자文字에는 세상의 모든 상대적 이치와 역활을 그 안에 담아 놓고우리의 소리 글훈민정음은 세상의 모든 상대적 이치와 뜻을 담아 놓은 문자를 바르게 푸는 풀이 글자라고 하며,

 

문자는 수학의 공식처럼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호의 집합이고각 기호마다 즉기본 문자마다 보편普遍 타당妥當한 세상의 상대적 이치를 담아 각 문자文字에 그 뜻과 역할을 담아 놓았으며,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각 문자의 역할과 그 문자가 지닌 뜻을 바르게 푸는 풀이 글자소리글자로서문자文字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뜻과 소리로 하나의 짝을 이루어 존재하는 우리의 소중한 글세상의 모든 이치를 담아 놓은 하나의 글큰 글이다 하여클 한맺을 글을 써서 한글韓契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에도 분명 나와 있듯이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 나라 말의 음이 중국과 같은 문자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져 그 뜻이 통하지 아니하여! 라고 되어 있습니다.

 

문자가 예전부터 중국 글, 한자漢字였다면,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한자불상유통與漢字不相流通이라고 해야 했으나, 훈민정음訓民正音에는 분명 국지어음國之語音, 이호중국異乎中國, 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처럼, 문자文字라 표기했습니다.

 

우리가 한자漢字라 알고 있는 문자文字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신제하신 이후에도 계속 문자라 불리어지다가 한자漢字라고 불려졌던 것은 근세에 들어서 불려졌다고 합니다.

 


홍무정운洪武正韻은 중국 명나라 태조가 당시 중국에서 쓰이던 음과 운, 당시 널리 쓰이던 오나라의 음을 배척하고, 중원의 운으로 바꾸어 편찬을 한 것으로 중국의 바른 음이란 뜻입니다.


아래의 글은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신제新製하시고 반포했을 당시 최만리 부제학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세종대왕에게 올렸던 세종 실록 10319장에서 21장에 나와 있는 상소 내용으로,

 

그 내용은 "언문을 지은 것이 지극히 신묘하여 그 창조적 지혜가 천고에 뛰어나지만, 우리 조정에서 개국 이래 지성으로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따랐다. 이제 동문동궤의 때를 당하여 언문諺文의 지음을 보고 듣는 이는 놀람이 있다. 언문은 다 옛 자를 본받았으니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형이 비록 옛 전자篆字를 본받았다 할지라도 소리로서 글자를 합하는 것이 온통 예와 위반되어 터무니가 없다. 만약 이 소문이 중국에 전해져 이를 탄하는 이가 있게 되면 어찌 사대 모화의 도리에 부끄럽지 아니하겠는가.

 

예로부터 구주九州안에 풍토가 비록 다르나 방언을 따로 문자를 따로 짓는 일은 없었다. 오직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西蕃의 무리만이 각각 제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오랑캐의 일이라 족히 말할 것이 없다.

 

전하여 가로되 중화로써 오랑캐를 변하게 한다 하였고, 오랑캐로 변함을 듣지 못하였다. 역대의 중국이 다 우리나라로서 기자箕子의 유풍이 있어 문물 예악이 중화와 비슷하다 하였는데이제 언문을 따로 지음은 중화를 버리고, 되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 일은 소합환의 향기를 버리고, 말똥구리의 환냄새에 취함이라." 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며 극렬히 반대를 했었고,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한 때를 기록에서 조차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도 소위 기득권을 손에 쥔 자들은 자신들이 지닌 정보를 독점하려 들었으며, 더욱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6년 간 치욕스러운 지배를 당하는 동안 우리의 문화, 우리의 역사와 정신은 철저히 왜곡, 조작되어 파괴가 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이 나라에 들어 온 미국과, 미국을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 더욱 왜곡 조작되어 우리의 문화, 우리의 역사와 정신은 더욱 왜곡, 조작되어, 지금도 문자에 담긴 뜻은 철저히 외면한 채, 지금도 여전히 친일파 국어 학자인 주시경이 만든 글과, 친일파 역사 학자인 이병도가 만든 역사로 우리의 글과,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있으며,

 

훈민정음의 소리 글만 우리의 글 한글이니 오로지 소리글만 사용해야 한다며 소리글 전용만을 주장하며, 선조가 물려주신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이자 나라의 글, 국어보다 오히려 영어와 외국어만을 맹신하는 작금의 교육에 이르렀으며, 자신이 태어난 이 나라의 역사와 국어를 학교에서 조차, 왜곡된 국어와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漢字 즉, 문자文字는 처음에는 약 3,000자에 불과했으나,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 자체가 변형되고, 그 수가 증가하여 한나라 시대 때에는 1만 여자로 늘어났고,

 

그 후, 당나라 송나라 시대에는 3만 여자로, 청나라 시대에는 5만 여자로 늘어났으며, 지금은 6만 여자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한자로 알고 있는 문자는 보통 표의문자로 알고 있지만, 문자文字는 표의表意 문자文字이면서 표음表音 문자文字이기도 합니다.

 

바람 풍, 물 수에서 보듯, 바람이란 뜻을 담은 풍이라는 소리 글자이지요. 그리고 지금도 중국에서는 문자文字는 그들의 글이 아니기에 한자漢字는 즉, 문자文字를 번거로운 글이다 하여, 번자煩字라 부른다고 합니다. 한글로는 '' 이라 쓰지만, '' 이라 불리는 문자는 무려 50여 개 넘게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지요?!



문자文字우리 선조들이 살아 온 역사이며 그 정신의 산물이자,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뜻 전달이 그 목적입니다. 우리가 쓰는 문자는 변치 않는 수학의 공식처럼,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진 기호의 집합체이고, 그 기호마다 즉, 기본 문자마다 각기 뜻이 들어 있으며, 문자는 문자를 만드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가 멸망한 후, 서기 100년 경 후한後漢 , 허신許愼이라는 사람이 문을 설명하고 자를 해설한다는 뜻으로, 당시 사용되던 9,353자를 선정하여 540 부수部首로 체계를 세우고한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육서六書란 이름으로 또 다시 분류하여 설문해자說文解字란 책을 만들었는데, 이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문자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결정적으로 문자의 뜻을 왜곡 및 변질을 시켜 놓았고또 다시 분류해 놓은 육서로 인해 도리어 문자의 뜻이 더 헷갈리게 되었다고 하며


허신許愼이라 하는 사람이 만든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문자를 만드는 원칙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며, 이 여섯 가지를 육서六書라 한다고 합니다그러나, 이 육서六書는 한자漢字인 문자文字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자를 공부하려면 문자文字를 공부하기에 앞서 반드시 먼저 이 육서六書를 공부해야 한다고 합니다.

 


육서六書

 

그 첫째가 어떤 물체의 모양模樣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상형象形 문자文字


그 둘째가 그림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말을 어떤 부호나 도형으로 나타냈다는 뜻의 지사指事 문자文字


그 셋째가 상형象形 문자文字나 지사指事 문자文字들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두 문자를 결합하여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회의會意 문자文字


그 넷째가 회의會意 문자文字, 상형象形 문자文字나 지사指事 문자文字들의 원리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글자, 두 자를 결합하여, 글자를 만들되, 그 중, 한 자을 나타내고, 또 다른 한 자을 나타내도록 만든 형성形聲 문자文字


그 다섯째가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가지고 최대한 다른 글자로 확대하여 쓰이게 한다는 뜻의 전주轉注 문자文字


그 여섯째가 이미 있는 글자의 음이나 뜻의 일부를 빌어다 쓰는 글자라는 뜻의 가차假借 문자文字, 이렇게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허신이 지은 이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자전字典이라고 하며, 중국 고대의 儒家의 경전은 물론,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와 설문해자가 저작되기 이전의 중국 문자의 집대성이기도 하고, 후한後漢 시대 이전의 문자 해설을 총망라하고 있어서 중국 문자학의 연구에 있어서는 최고의 기본 경전經典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천자문千字文이라 부르는 천자문天字文


천자문千字文을 중국 양북조 시절 양무제[서기武帝:502~549] 시절의 사람인 주흥사周興嗣라고 하는 사람이 썼다고 흔히 그렇게 알고 있으나, 실은 천자문을 주흥周興이라고 하는 사람이 베껴[베낄 사] 썼다고 하여 주흥사周興嗣라고 하며,

 

천자문千字文은 그 시절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紀元前, 후한後漢 시절, 조조曹操[ BC 206~AD 220]의 아들 조비曹丕가 아비인 조조曹操의 제위를 찬탈하여 위나라[220~265/266]를 다시 세웠는데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세운 위나라의 당시 재상이었던 종요鍾繇가 하루 만에 천자문千字文을 지어 조비曹丕에게 바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짓느라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해서 백수문白首文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천자문千字文은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자신의 아비였던 조조로부터 강제로 왕위를 찬탈한 것을, 당시 재상이었던 종요鍾繇가 조비에게 아비인 조조에게 다시 왕위를 양위하라는 충언을 계속 간하자,

 

조비曹丕가 그를 탄핵하여 없애기 위해 "하루 만에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구二白五十句의 글을 지어 바치되, 하나라도 중복되는 것이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는 엄명을 내려,

 

종요鍾繇가 당시 중국에서 전해오며 사용하고 있는 문자들 중에서 천지와 우주의 이치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도와 법칙을 비롯하여 나라에 대한 충의와 부모에 대한 효성, 사회 생활에서의 의리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천자문千字文을 지은 것이며, 당시에는 천자문千字文이 아니라 천자문天字文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인 언재호야焉哉乎也의 바른 뜻은 "그 뜻을 바르게 잇고 이어 네 뜻을 이루고 그 뜻을 바르게 이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흥사周興嗣 즉, 주흥이라는 사람이 천자문을 베낀 시절보다 250여 년이나 훨씬 앞선 백제의 오경박사 왕인이 서기 285년에 일본에 천자문을 가지고 가서 가르쳤습니다. 여기서의 오경은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뜻하며, 이 오경五經에 뛰어난 사람을 오경박사五經博士라 칭하였습니다.

 

 

 

문자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상의 모든 이치와 뜻과 그 역할을 담고 있는 뜻과 소리, 음과 양陰陽으로 짝을 이룬 하나의 글, 큰 글이다 하여, 클 한, 모두 한과 맺을 계, 애쓸 계, 맺을 글, 이을 글자를 써서 한글韓契이라 불리는 것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우리의 문자를 일본인도 중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 스스로가 자꾸 중국 글인 한문漢文이라 우기며 없애려 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나라의 글 국어는 제대로 가르칠 생각은 안하고, 제 나라의 국어와 역사는 스스로 축소하여 내팽개치고,

 

오로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영어 만능주의와, 일본이 지배하던 식민 시절, 일본의 자금 지원을 받은 친일 국어학자인 주시경이 왜곡시켜 놓은 훈민정음의 소리 글만 우리의 글, 한글이라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기야 제가 어릴 적부터 '조선 놈은 맞아야 한다.' 는 소리를 숱하게 들으면서 컸고, 커서도 그런 말을 무척 많이 들었었는데, 정작 일본인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 본 기억은 결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말은 언제나 늘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인 한국인에게서 들었고, 그들도 분명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마치 이 땅 선조들의 피와 역사를 물려받은 한국인과 조선인朝鮮人이 아닌 듯, 이런 말을 아주 당당하게 같은 한국인에게 사용하더군요.

 

그런 그들을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우리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밝은 지혜와 올바른 정신과, 제 나라의 역사와 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지혜와 사리에 밝은 대한국인韓國人이자, 어른에 대한 예의가 바른 조선인朝鮮人들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살아가는 불쌍不雙한 검은 머리 외국인이더군요.

 


그런 그들은 대체 무엇이 두려워 소리 글만 우리 글, 한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 소리에 들어있는 바른 뜻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는 을사 오적의 주범, 이완용의 조카이며, 대표적 친일 학자였던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 이병도가 쓴 역사 책으로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배웠었고,

 

또한 이 나라의 명문대라 일컫는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을 한 어떤 이는 일본의 "마루타 부대" 또는 "731부대" 로 널리 알려진, 살아있는 인간에게 잔혹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부대를, 우리나라의 독립군 부대라고 말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지요?!

 

 


이병도에 대한 참고 자료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ickduck&logNo=20187187565

 

 

 

http://ko.wikipedia.org/wiki/정운찬#.EB.85.BC.EB.9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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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펌 글로 친일 국어 학자 주시경에 관한 내용입니다.

 


일제는 주시경을 비롯한 여러 친일 언어 학자들을 지원했습니다. 특히 주시경은 평생 동안 한반도 원주민 언어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한반도 원주민 언어에 맞게 훈민정음을 차용한 정서법을 제작했습니다. 주시경 이후로 조선어 학회는 주시경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조선어(=한국어)창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를 비롯하여 8도 방언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이러한 언어 조작 작업은 일제가 독자적으로 한 게 아니고, 여러 서구 언어 학자들도 합세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의 언어 학자인 람스테드가 있는데, 람스테드는 '알타이 가설' 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람스테드는 서구 세력의 지원으로 아시아의 언어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그도 정치 권력에 의해서 조선어 학회가 만든 조선어를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정의했습니다.(물론 람스테드는 일본어도 알타이어족에 포함 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1940년대에 일어난 일제의 조선어 학회 탄압 사건은 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1940년대라면 도죠히데키를 중심으로 하는 반 서구적인 극우주의자들이 집권할 때이고, 도죠는 한반도 조선 급조 작업을 철회하기 위해 조선어 학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그러나 일제의 이러한 일본의 계획은 일제의 패망으로 실패했고, 그 이후로 미국이 직접 한반도 조선 급조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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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일으킨,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외세의 열강에 의해 침략을 받던 조선 말末 시절, 일본과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맺기 불과 4개월 전인 1905 7. 27일 일본과 미국은 비밀리에 '미국은 필리핀을일본은 한국의 독점적 지배권을 상호 인정하며, 일본의 허락 없이는 조선은 어떠한 대외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 는, 


우리에겐 너무나 굴욕적인 일명 "가츠라 테프트밀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국을 아직도 우리의 변치 않는 우방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미국은 절대 믿으면 안 되는 나라, 우리나라보다 늘 자국의 국익이 최우선인 나라입니다.

 

이후, 1905 11. 17일 일본과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맺어졌고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36년 동안 굴욕적인 지배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일본과 미국 사이에 비밀리에 맺어진 "가츠라 테프트밀약은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면서 깨어지게 되었고


이후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려던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전 운동이 벌어지게 되자이에 대한 명분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하도록 유도를 했고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 


미국은 사전에 그 정보를 도청과 암호 해독을 통해 일본의 공격을 미리 알고서도오히려 장병들을 거의 휴가를 보내고항구에는 낡은 배를 정박시켜 놓았다고 합니다어쨌든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미국 내의 반전 목소리를 잠재우고, 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게 된 미국은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 내었고


당시 일본을 상대로 독립 운동을 벌이던 조선과 중국인 포로들을 생체 실험도구로 삼아 잔인한 생체 실험을 일삼던 일명 731부대의 인체 생체 실험기록은 전부 미국이 가져갔으며, 일본의 731 부대장은 이러한 공로?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아 미 군정으로부터 사면을 받기도 했습니다. 



에 대한 기사 자료입니다. 기사 원문 바로 가기 ☞ 클릭



또한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배운 세균전細菌戰을 우리나라 6.25 전쟁에 사용하기도 했으며, 우리 선조들과 중국인들의 슬프고도 아픈 역사의 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미국 선진 의료기술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이 731 부대를 독립군 부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심지어 저의 아들은 학사장교 출신인데도, 이 731 부대를 모르더군요


그 연유를 물어보니 학교에서도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지금은 제가 알려 줘서 알고는 있지만어쩌면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우리 후대에게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대가이겠지요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그 나라를 정복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 인지 혹, 알고 계시는지요?!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와 그 나라의 국어와 음식문화를 비롯하여 그 나라의 달력 및 도형량 등그 나라의 고유 문화를 비하하며그 나라의 문화를 끊임없이 말살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지요


그 방편으로 반드시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지요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지요그래야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꾸준하게 펼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한 마디로 말해 뺨치고 얼르고 달래는 격이지요


지금도 우리나라엔 구한말 무렵 우리나라를 침략한 미국과 다른 나라의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들과 학교들이 많이 있지요그리고 친일파의 후예들이 세운 학교들도 엄청나게 많이 있지요특히 달력, 도형량은 단순한 책력이나 측량 단위가 아니라, 그 나라가 지닌 파워 즉, 국력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도형량은 인치, 야드, 파운드를 쓰는 영국과, 미터, 제곱 미터, 킬로그램을 쓰는 미국이 있으며,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근, , 이라는 척관법을 썼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의 도형량을 쓰지만, 예전엔 우리의 도형량도 미국의 도형량과 함께 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척관법은 아예 사용도 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해 놓았습니다. 왜! 일까요?!



그리고 얼마 전, 한 뉴스에서는 일기예보 시간에 요즘의 일기日氣가 24절기節氣에 맞지 않다 하면서 그 이유로 24절기節氣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0년 전, 중국中國의 황하黃 지역地域에서 만들어졌는데 24절기를 지금의 한반도에 적용을 하기에 맞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또한 요즘 지구의 날씨가 변한 것도 그 이유라고 하면서 말입니다그런데, 그런 잘못된 절기節氣를 우리가 장장 2000년에 걸쳐 사용使用을 했다고요?! 중국의 그 황하黃 지역地域은 우리 선조先祖들의 옛 역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우리가 요즘, 흔히 서울의 한강漢江 이북以北과 이남以南을 구분할 때 흔히 쓰는, 강남江南강북江北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의 동정호洞庭湖를 기준으로 하여, 동정호의 북北쪽을 호서湖西, 동정호의 남南쪽을 호남湖으로 나뉘어 불렀던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민족이 점차 한반도 안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서해西海를 누런 물이 흐르는 큰 강이라 하여, 황강黃江이라 불렀으며그 황강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의 임금이 계시는 곳이라 하여, 강남江南, 한반도는 강북江北으로 나뉘어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르던 황강黃江은 이후에, 황해黃海라 불리다가 지금은 서해西海라 부르고 있습니다제가 어렸을 적, 중학교 시절, 제가 배우던 역사歷史 책, 지리地理 책에서는 지금은 남해南海라 부르는 남해는 남지나해南支那海라 불렀으며


일본과 마주한 바다는 현해탄玄海灘, 또는 동지나해東支那海라 불렀으며, 우리의 동해 바다는 동해東海라고 불렀으며, 서해西海바다는 황해黃海라 표기하고 불렀었는데, 그렇게 부르던 명칭들은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서 사라지고 없지요


현해탄玄海灘의 탄灘은 여울 탄灘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고 급하게 흐르는 곳을 "여울" 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마주한 현해탄玄海灘 사이에는 "대마도對馬島" 가 있으며, 


우리나라와 대마도 사이에는 해류海流가 빠르기로 세계에서 소문난 "쓰시마" 해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쓰시마" 라 부르는 "대마도對馬島" 는 원래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서해西海를 누런 물이 흐르는 큰 강이라는 뜻의 황강黃江, 일본과 마주한 바다는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이라는 뜻의 현해탄玄海灘이라 부르던, 우리 선조들의 배포排布, 이제 좀 느껴지십니까? 


하긴,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간다는 저승, 저승을 뜻하는 명왕성冥王星, 저승에 가면 누구나 처음 만나게 되는 첫 강이란 뜻의 초강初江, 명왕성冥王星"카론Charon" 이라 부르는 위성衛星과의 사이, 


그 거리의 크기를 우리 선조들은 초강初江이라 부를 정도의 배포를 지니고 있는 우리 선조들에게 지구의 강江이나 바다 정도의 크기야 저승의 초강初江 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우리 선조들의 배포排布, 정말 엄청나지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우리의 역사가 기록된 책들을 전국에서 모아 무려 장장 6개월에 걸쳐 태워 없애버렸으며, 조선 말 무렵 당시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지금의 강대국들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와 서적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우리 역사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지요아직도 남아 있는 역사에 근거하여, 


예전 우리의 선조들이 기록한 하늘의 별자리를 측정하면그 위치는 이 한반도 안이 아니라, 모두 중국中國으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지신라고구려백제, 고려, 조선은 지금의 한반도가 아닌 모두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나 계신지이런 사실을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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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이 글은 펌 글입니다.



허무해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누구인가를!

 

 

- 혹시 소설가 이병주선생을 기억하십니까? 필자가 젊은 시절 애독했고, 존경했던 작가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허무를 안다는 것이다." 필자의 삶 중간 중간, 터닝 포인트 a turning point, , 삶의 전환점轉換點마다 기억이 떠올라 내뱉던 말이었습니다.‘안다는 것은 허무를 안다는 것이다라는 것을 첫 번째로 실감한 것은 20대 시절 이었습니다.

 

필자의 아는 척이 다소 불편하실지라도, 특정 종교를 폄훼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란 것을 너그러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20대 시절의 필자는기독교 신자' 를 넘어 '기독교 환자' 라고 할 정도로 기독교에 심취했었습니다허나, 날이 갈수록 견디기 힘든 것이 죄인 취급을 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라는 자복기도와 회개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세월과 함께 죄 지은 것이 많아 수긍을 하겠지만, 당시 20대였고,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 지은 죄가 별로 없는데도, 매주 마다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이 점점 고역으로 다가오고 반발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이 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은 분명 우리나라 말인데, 어째서 서양에서 온 종교인, 기독교 신의 명칭이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대답 대신, 믿음이 약해졌다고 또 무릎을 꿇리고, 필자 대신 간곡하고, 절절이 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 후에도 틈만 나면, 이 어린 양을 불러서 사탄의 시험에 들지 말라고 하고 회개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에게 한글 성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문 성경도 있음을 알게 되어 헌책방에서 구해 보았습니다. 뒤적이다보니 하나님이 "상제上帝" 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되어 다른 한문성경을 구해 보았더니, 이번에는 하나님 대신 "천주天主" 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 생각되어 사방팔방 알아보았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성경이 들어올 때, 의 명칭은 하나님이 아니라, 천주와 상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카톨릭은 천주天主로 지금도 쓰고 있고, 하나님을 천주라고 칭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1930년대 초, 중국 대륙에서 서해를 건너오는 배에 카톨릭 선교사들이 조선인들과 함께 타고 있었답니다. 풍랑이 심하게 일어 배가 흔들리자 조선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느님! 하느님! 하며 살려 달라고 비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하느님이 누구냐고 묻자, 하늘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세우자 조선인들의 최고의 신은 상제가 아니라, 하느님인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 후 상제, 천주라는 명칭으로는 선교가 난관에 부딪치자 선교사들은 교황청에 공문을 보내어, 조선에서 최고의 신의 명칭은 하느님이니 상제나 천주대신 하느님으로 명칭을 바꿔 달라고 요청해서 우리 귀에 익숙한 하나님으로 명칭을 바꿔 출간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일설에는 민족 종교를 말살하기 위한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들의 농간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 때가 일본의 강점기였으니 신빙성이 있는 주장입니다. 아무튼, 상제나 천주, 하나님이란 명칭을 당시의 선교사들은 브랜드개념으로 본 것인 것 같습니다.


브랜드란, 제품의 생산자 혹은 판매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자들의 것과 차별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특한 이름이나 상징물의 결합체로, 현대에 들어 브랜드는 단지 다른 제품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제품의 성격과 특징을 쉽게 전달하고 품질에 대한 신뢰를 끌어올려,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문화적 중요성을 가지는 상징체계가 되었습니다.

 

하여, ‘천주 보다는 하나님 이란, 이 브랜드를 잘 활용하면, 성경 판매는 물론, 교세 확장에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겠구나! 생각하고는 로마 교황청과 각 교단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사료됩니다.

 

 

조선에서 최고의 신, 브랜드는 하나님이므로, 상제나 천주대신 하나님이란 브랜드로 바꾸어 성경을 출간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경우를 메이커 브랜드maker brand 가 아닌, 유통사의 프라이빗 브랜드 private brand 라고 합니다.

 

메이커 브랜드는 "여호와" 인데, 유통사에서 판매촉진을 위하여, 현지의 최고 브랜드인 하나님을 차용한 것이죠. 대단한 성공 사례였습니다. 만약, 하나님이란 브랜드를 차용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 상제나 천주를 사용했다면 오늘날 이런 교세가 가능했을까요?

 

 

당시, 우리나라에도 민족종교들이 있어 종교간, 교세확장 경쟁 중이였습니다. 카톨릭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서학西學 이라 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맞서 우리나라는 동학東學을 세웠습니다.

 

그러다 서학西學이 천주교天主敎라 이름을 바꾸자, 동학은 천도교天道敎로 이름을 바꾸어 맞섰습니다. 두 종교 다, 최고의 신을 상제上帝라 칭하자 혼돈이 왔습니다. 그러자 기독교는 재빠르게 상제上帝를 하나님으로 명칭을 바꿉니다.

 

한발 늦은 민족 종교계는 한울님으로 명칭을 바꿉니다. 하느님이란 명칭도 있었는데, 오판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느님과 한울님은 다릅니다. 그래서 기독교와 천주교에서는 오랫동안 하나님과 하느님의 표기문제를 두고 논쟁 중이라고 카톨릭 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톨릭 대사전에는 1935년에 출간한 한글 성경부터 하나님으로 표기를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대세는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고 친숙한 하나님 쪽으로 기우는 반면 민족 종교는 쇠락하게 됩니다.

 

이것이 브랜드의 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 하나님이란 브랜드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고, '하느님 명호 사용금지' 라는 소송을 건 '고정근철' 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변론은 부처님 오신 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 받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용태영' 변호사가 소송 대리인을 맡았었습니다.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하느님 호칭사용 법정공방을 검색하시면 관련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법조계까지 기독교 일색이고, 기독교 일색인 신문과 방송에서 제대로 다루어 줄 일 없던 소송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끝나고 맙니다.



필자가 양측의 변론과 반론 공방까지 다 담아 하나님 법정에 서시다!” 라는, 법정 영화로 만들고자 시나리오를 만들어 가지고 제작을 위해 투자를 받으러 다니다가 택시 안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분실되었습니다.

 

다시 쓸려면야 법정 기록들이 있으니까 별문제가 없지만, 잃어버린 것이 영화 만들지 말라는 계시인가 보다고 그만 포기했습니다. 왜냐고요? 종교란 믿음입니다. 믿음은 의지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겁니다.

 

의지할 곳 없어서, 그곳으로 가서 의지하겠다는 사람들, 기댈 곳이 없어서, 그 곳으로 가서 기대겠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맞겠다고 당시는 판단했습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민족정기를 되찾기 위해서 다시 해보자는 지인들이 있지만………

 

 

그리고 성경의 브랜드 무단사용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입니다. 우린 지저스 Jesus를 우린 아무런 의심 없이 예수로 발음합니다. J<> 으로도 발음되지만 <> 으로도 발음되니까, "지저스 Jesus" "예수" 로 발음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을 합니다만,

 

영어 발음으로는 분명 지저스라고 발음합니다. 지저스 Jesus는 고대 그리스어 이에수스 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 "여호수아", 또는 "에슈아" 로도 불렸답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야소耶蘇로 들어와 지금도 예수의 한자표기는 없고, 한자로 쓸 때는 야소耶蘇로 씁니다. 는 아버지를 뜻하는 말이고, 는 소생하다, 부활하다, 소리라는 뜻이므로 야소耶蘇로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칭과 함께 예수도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들의 농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아무튼목사와 신부들이 어느 날, 절에 구경을 갔답니다. 절에서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 라는 것을 보았답니다.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줄여서 보통 "예수재豫修齋" 라고도 합니다. 예수재豫修齋, 자신이 살아 있을 적(생전-生前)에 미리(-) 자신을 위해(-) 지내는 의식(-)입니다. , 자신이 죽은 후에 극락가게 해달라고 비는 의식입니다.

 

그 설명을 듣고, 목사와 신부들은, 야소의 역할이 바로 저건데 하면서, 얼른 또 벤치마킹을 하고선 야소라는 브랜드를 예수로 교체했다고 전합니다. 불교에서는 예수豫修란 명칭이 불교 것인 줄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종교분쟁을 일으키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에수스, 여호수아, 에슈아, 지저스, 야소보다는 예수! 얼마나 듣기 좋고 부르기 쉽습니까? 여러분도 사업을 하실 때는 인지도 높은 듣기 좋고, 부르기 쉬운, 익숙한 이름을 선정하면 상당한 브랜드 효과가 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아무튼, 한문 성경으로 왜곡된 진실을 확인하는 와중에 결정적으로 필자가 기독교를 떠나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늘 필자를 윽박지르던 구절이라, 이번에는 성경의 원전이라는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사전을 구해, 맞나 다르나 살펴보았습니다. 결과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허무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허무를 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10년 넘게 열심히 다녔는데 속았다니!

 

 

'회개하라!' 는 히브리어로 Metanoia 메타노이에!', 번역하면 '돌아서라 그대여!' 였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가 아니라, '빛이 네 뒤에 있다!' 였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감동을 받아 일어나 히브리어 성경에 큰 절을 하였습니다.

 

그 뒤를 잇는 팔복의 다른 가르침도 궁금했지만, 예수의 마지막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바로 돌아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지 않게 되었지만, 돌아서라! , 살면서 앞이 깜깜할 때마다, 떠 올리는 지혜의 말씀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우리 속담에, 여편네 바람나면, 그 남편과 아이들만 모르지, 온 동네 사람은 다 안다.’ 는 말이 있습니다. 100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를 지배하고, 서양西洋에 막대한 문화 충격과 문명文明을 전해준 것이 우리나라라는 것을 우리 국민들만 모르지, 외국의 지식인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속고, 확인을 하지 못해 그동안 몰랐지만, 그래서 지금 허무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실체實體를 알아야만 합니다. 바보같이 속은 것도 분한데, 빼앗긴 것도 모자라 모르기까지 한다면 조롱당하며, 멸시를 받습니다우리 아이들이 해외에 나가서 조롱받고, 멸시 당하게 그냥 내버려 두실 겁니까? 허무해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꼬레 CORE". "꼬레아 COREA". 그리고 "코리아 KOREA!"*

 

우리나라 꼬레아 COREA” 가 아시아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우리만 모르지, 서양의 유식한 사람은 다 압니다. 우리나라 이름이 외국에서 "꼬레" 라 불리는 것은 "고려高麗" 의 영어 표기 "Koryo" 에서 전화轉化한 것으로, 외국인들은 "고려" 라는 발음이 잘 안되어 "꼬레" 라 발음하는 것이라 짐작된다고 역사학자는 주장합니다.

 

'꼬레 CORE' 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부를 때 명칭입니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우리나라를 부를 때, "꼬레아COREA" 라고 부릅니다, “KORE" "KOREA" 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단어입니다.

 

KOREA라 부른 것은 얼마 되지도 않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것도 일본과 미국이 서로 짜고 CK로 바꾸어 "꼬레아 COREA" CK로 바뀌어 지금의 KOREA로 고착화 된 것입니다.

 

영어로 코아 core, 그 코아 core의 뜻을 아십니까? 코아 core는 가운데, 중요한, 중심의, 그런 뜻이라 합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 하여, 거기에 지역, 구역이라는 뜻의 에리어 area, 그 에리어 area의 약자인 "A" 를 붙여서, "꼬레아 COREA" 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부 국가만 빼고는 우리나라를 COREA로 표기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세운 고종高宗 황제皇帝!! 


-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조선朝鮮을 다스리던 조선 말시절時節, 그 당시 아시아는 모두 한자문화권이였습니다. 같은 한자를 쓰면서, 음은 비록 틀리게 불렀지만 뜻은 다 통했습니다.

 

'고종高宗 황제皇帝' 께서 나라 이름, 국호國號를 새로 지으면서, 나라 이름 앞에 큰 대를 붙여, "대한제국大韓帝國" 이라 이름을 짓는데, 아무도 간섭 안 했습니다. 청국靑國, 일본도. 당시 강대국이라 하는 나라의 그 누구도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 일까요? 그들이 대자의 뜻을 몰라서 그냥 뒀을까요? 아시아 역사상 나라 이름에 공식적으로 대자를 넣은 것은 아마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유일할 것입니다.

 

 

중국中國 대륙大陸에서는 세워졌다가 몰락한 왕조가 수없이 많습니다. 헌데 이 나라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략 2~30년에서, 2~300년 정도를 유지하다가 사라집니다. 정통도 아니고 전통을 계승한 나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라 이름은 모두 다, 외자를 씁니다.

 

, , , 그리고 춘추春秋 시대時代, , , , , , 전국戰國 시대時代의 제, , , , , , ,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했다고 하는 진시황秦始皇의 진, 유방의 한, 왕망의 신, 삼국 시대의 위, , 오를 비롯하여,

 

남북 조 시대의 오호 16국과, , 에 이어 오대 십국, 남북 송 시대, 그리고, 과 명그리고 청나라 까지, 과 후, 과 서西, 과 북, , 시기時期와 지역地域을 구분하기 위해, 앞에 붙이는 것 외에는 모두 외자를 씁니다.

 

 

! 그랬을까요? 거기에 우리는 꼭 나라를 붙여서 부릅니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서구까지 넘봤던 몽골 제국도 우리에게는 그저 원나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아메리카United States America” 를 그들이 미국이라 불러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미국이라 부르고, "더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텐 엔 노르덴 아일랜드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라고 하는 나라에서 영국으로 불러 달라 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영국이라 부르고,

 

러시아는 우리 마음대로, 아라사俄羅斯, 혹은 노서아露西亞, 또는 노국露國이라 부르고, 프랑스는 법국法國이라 부르고, 저먼 German,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고 하는 독일을 한때, 덕국德國이라 불렀습니다.

 

당시 세계열강이라 부르는 그들 나라 이름을 우리가 부르기 쉽게 외자로 짓고, 나라 국자를 붙여 그들 나라를 불렀는데, 당시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종高宗 황제皇帝께서는 "대한大韓" 이란, 두 글자로 나라 이름을 짓고, 그 뒤에 "제국帝國" 이란 명칭도 붙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국帝國이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 외에, 자신의 정치력이나 군사력이 미치는 또 다른 나라가 있을 때만 붙이는 것입니다.

 

다들 제국帝國의 뜻을 몰라서 고종도 붙이고, 일본과 청국도 그 뜻을 몰라서 그냥 뒀을까요? 우리가 그동안 배운 역사로는 당시 조선의 고종은 변방의 한반도 조선, 미약하기 짝이 없는 힘없는 나라의 일개 왕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종이 거창하게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나라 이름을 짓는데, 일본이나 청국, 그리고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당시 강대국들이라 하는 그들이 왜!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까요?

 

무식해서? 아니면 남의 나라 이름 간섭할 수 없어서? 간섭하면 혼날 까봐? 당시 그들은 우리나라를 각자 내정 간섭들을 하느라 무척 바빴다고 역사가歷史家들은 말하는데 말입니다.

 

 

거기에 고종은 한술 더 떠서 왕이 아닌, 황제皇帝라는 명칭도 사용한 것도 모자라 도장, 옥새玉璽까지 파서 사용했습니다. 일본도 청국도 그리고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당시 강대국들이라 하는 그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왕과 황제를 구별 못해서요?

 

독일은 그런 고종을 킹King, 왕이라 호칭呼稱하지 않고,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 Kaiser로 호칭呼稱을 했다고, 얼마 전 그들이 공개한 문서에서 공개되었습니다. ! 일까요?

 

영국 여왕에겐 여왕이라는 뜻의 "Queen" 이라 호칭하면서. 고종에게는 왜! 황제라는 뜻의 "카이저 Kaiser" 로 호칭했을까요? 왕들에게도 급수級數가 있음을 그들이 몰라서 그랬을까요?”

 

당시 우리나라를 표기 할 때, 한때 "The Corea" 라고 표기를 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The Chosun" 이라 표기도 했고요. "The" 는 큰 나라를 부를 때, 앞에 붙이는 것이라 합니다.

 

 

고종은 미국에 금 5만 톤을 차관으로 주어, 미국을 부흥 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독일에는 100만 마르크를 예치했는데, 일본이 50만 마르크는 빼먹고, 나머지 50만 마르크의 행방을 몰랐는데, 그 행방을 아는 사람이 얼마 전, 방한을 앞두고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의 임금, 고종황제는 그동안 우리가 알듯 절대 무능했던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나라 이름에 큰 대자를 넣고, 거기에다 제국帝國까지 넣은 배포 크고, 유능한 군주였습니다.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조선朝鮮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나라 이름을 바꾸고, 조선을 이어 다스리던 대한제국大韓帝國 무렵의 그 시절時節, 당시 아시아는 모두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었습니다.

 

지금 한반도 조그만 땅덩어리 안에서도 지역마다 같은 뜻이나 말은 조금씩 차이가 나듯, 같은 한자漢字, , 같은 문자文字를 쓰면서, 은 비록 다르게 불렀지만 뜻은 다 통하였지요.

 

이렇듯 우리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는 중국내에서 같은 문자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지는 그런 문자文字의 음과, 뜻을 새로이 정비를 하여 훈민정음을 반포頒布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질이 안 좋으신, 우리 역사학자님들께서 일본의 사주를 받아 그렇게 쓸 수뿐이 없었노라! , 핑계들을 대시고 그의 후학들은 그것을 고치면 자신들 밥그릇이 날아가니까 못 고치겠다고 버틴다고 합니다.

 

 

- 서양 상인들이 당시 아시아 즉,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수입하면서, 유럽 시장에 충격을 준 물건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도자기와 옻칠 가구였습니다. 그 주산지가 바로 "꼬레" 우리나라였습니다.

 

차이나 CHINA의 뜻이 도자기인 것을 아십니까? 영어사전에서 차이나 CHINA의 뜻을 찾아보면 도자기로 나옵니다. 인터넷 말고, 오래된 종이 영어사전에서 찾아야만 나옵니다.

 

이것을 유식하다는 학자님들께서는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의 진나라를 지나支那로 부르다가 차이나CHINA가 됐다고 우기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지나支那의 뜻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재팬 JAPAN의 뜻이 옻칠가구인 것을 아십니까? 영어 사전에서 재팬 JAPAN의 뜻을 찾아보면 옻칠가구로 나옵니다. 이것 역시 종이 영어사전에서 찾아야만 나옵니다.

 

이것 역시 질이 안 좋으신 유식하신 학자님들께선 일본日本을 일본어로 닙본Nippon 또는 니폰이라 하는데, 닙본이 쟈폰JAPAN으로, 쟈폰이 재팬으로 불리게 됐다고 주장을 하십니다.

 

 

과 난의 차이를 아십니까? 과 난의 차이는 전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력싸움이고, 은 한 영토 안에서 이념의 차이로 일어나는 무력도발을 뜻합니다.

 

6-25 동란動亂을 처음에는 한 영토에서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이라 하여, 동란動亂이라고 했다가, 남북이 따로 정부를 세우고 국가로 공인을 받으니까 이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이었다고 해서, 6-25 동란動亂을 요즘엔 전쟁戰爭이라는 뜻의 "6-25전쟁戰爭" 이라 부르고 있습니다만,

 

조선朝鮮 역사상 홍경래의 난, 임진왜란壬辰倭亂", 그리고 "병자호란丙子胡亂" 이 있었죠? , 같은 민족民族끼리, 이념의 차이로 일으킨 반란이었지, 국가國家 국가國家 간에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여 홍경래의 난이고, 임진壬辰 에 왜족倭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해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고, 병자丙子 에 호족胡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해서 병자호란丙子胡亂입니다.

 

왜족倭族과 호족胡族은 같은 영토, 조선朝鮮 안에 왜족倭族과 호족胡族이 있었다는 뜻인데,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지금의 한반도 안에 조선朝鮮이 있었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지금의 우리 역사는 지리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다음은 개인적인 생각의 생각입니다. 남의 밥벌이에 재 뿌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양해 바랍니다. 국어학자와 역사학자는 꾸준히 우리민족의 문화를 왜곡 변질 시키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라 하는 곳이 있습니다.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사업의 추진과, 연구 활동을 관장하는 국가 기관인데, 이곳에서 하는 일이 참 마땅치 않습니다.

 

얼마 전, 우리가 잘 못 쓰고 있는 단어인 너무' 가 일상적으로 너무 좋다등에 너무 많이 쓰이므로 긍정의 뜻으로 써도 된다고 했답니다. ‘너무 ,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 를 뜻하는 말로 부정적인 단어인데,

 

국민들이 그것을 잘못 쓰고 있으면 홍보와 교육을 통해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많이들 잘못 쓰고 있으니 그대로 써도 된다고 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동안 표준말이라는 명분으로 숱한 우리말의 보고인 사투리를 못 쓰게 하더니, 이제는 부정의 뜻을 가진 단어도 긍정의 뜻으로 써도 된다고 하니, 존립의 의미가 있는 곳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계절이 장마철인데, 장마에 오는 비는 장마비가 아니라, 장맛비랍니다. 된장 맛인지, 간장 맛인지, 고추장 맛인지, 장마철에 내리는 비는 장마비가 아니라, 장맛이 나는 장맛비랍니다.

 

 

하기야 필자가 어릴 적 천자문을 배울 때는 하늘 천, 따 지가 아니라, 하날 턴, 따 디였습니다. 우리의 글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게 왜곡 조작한 것입니다. 정말 꾸준히들 왜곡, 변질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서는 데는, 일본보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더합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新增 東國輿地勝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선朝鮮이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기록을 담은 조선朝鮮의 지리지地理志입니다.

 

요즘 친일파들이 열심히 사서 폐기하고 있다고 하니 혹여, 자신이 조선朝鮮의 후예라 자부하시면, 서둘러 한질 사셔서 가보로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신간일수록 교정 편집이란 명분으로 왜곡이 심하니, 가능하면 오래전에 출판된 것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대륙大陸 조선朝鮮의 한반도 이주*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중국中國 대륙大陸의 정중앙中央"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西安" 에서 대륙의 변두리인 지금의 이 한반도로 이주해 와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주해 와서 살고 있듯이 우리는 다 이주민移住民입니다. 허나,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주할 당시는 대륙 조선의 서울을 옮기는 천도遷都는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제후국 중, 그 하나였던 왜는 오랜 세월 동안, 변방에서 수천千年 동안, 가까이는 7세기에 걸친 막부幕府시대를 조선의 지배를 받으며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시위도 그 때 겪은 열등의식의 발로입니다. 막부幕府시대란, 야전에서 천막을 치고 경비를 서던 시대를 말합니다. 는 무려 700여 년을 천막에서 경비를 서며 지내야만 했습니다.

 

, 순하고 아름답다는 뜻도 있지만, 조선의 변방을 빙 둘러 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는 그들 자존심 회복의 일환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日本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대륙 조선에서 벌어진 서구 열강의 조선 나누어 먹기에 끼어들었다가 서구 열강과의 다툼에서도 밀리고, 중국 공산당에게도 밀려 중국 대륙에서 지금의 일본 열도로 쫓겨나게 됩니다. 일본 열도의 원주민이 누군지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서구 열강들에게 노쇠할 때로 노쇠老衰한 조선朝鮮과 유약柔弱한 나라, 신생 대한제국大韓帝國은 너무나 탐나는 제국이었습니다. 금 매장량은 물론 모든 물산物産이 풍부했던 대륙 조선을 나누어 먹기 위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음모에 따라,

 

아귀다툼 속에, 대륙 조선은 결국 공산화共産化가 되어 비리고, 자칭 일제도 공산당에 밀려 지금의 일본 열도로 쫓겨나면서 대륙 조선과 대한제국은 중국 대륙에서 사라져 버리고 한반도의 조그만 나라로 전락하고 맙니다.

 

손문孫文도 조선의 독립군이었지만, 1912년 중화민국을 선포하여 약칭을 중국으로 합니다. 그래서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中國이 정식 국호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대륙은 서구西區 열강들의 대륙 조선 나눠먹기 음모로, 결국 대한제국은 몰락하고 통치와 치안의 부재不在에다가, 국공國共 내전에 항일투쟁까지 겹쳐, 전쟁과 난리로 사람 살 곳이 못 되었습니다.

 

대륙에서 쫓겨난 왜는 마지막 발악의 음모로 무주공산마냥 비어 있던 한반도에 조선 총독부를 차려 놓고, 대륙 조선의 나눠 먹기에 어떻게든 끼어보려고 대륙 조선인들의 이주를 유인합니다.

 

 

당시 왜가 내놓은 이주 유인책誘引策으로는, 조선을 팔아먹는 친일파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나눠주고, 요즘 기획 부동산업자들이 잘 쓰는 수법처럼, 마치 조선 황실이 옮길 땅 인양, 사기를 칩니다.

 

곧 조선의 황궁도 옮기도 조선 황실도 이주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도 퍼트리며 짝퉁 경복궁도 짓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구획 정리하여 행정 구역도 팔도八道로 나누었습니다.

 

이주민들이 낯설지 않게 여기저기 대륙 조선의 흉내를 내어 대륙의 지명을 따다 곳곳에 지명도 붙이고, 대륙 조선의 축소된 모양새를 갖춥니다. 유언비어의 효과도 있고, 살기도 힘든 판에 땅을 무상으로 주고 이주비도 준다는 말에 이삿짐을 싸는 양반들이 늘어납니다.

 

덩달아 양반들에게 고급 공예품을 제공하던 장인들과, 각 문화의 명인들도 한반도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언비어는 유언비어일 뿐, 조선 황실은커녕, 대한제국도 한반도로 이주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유적과 유물들은 다 무엇이냐고요? 단언컨데! 다 짝퉁입니다. KBS의 역사 스페셜, 금지된 장난을 찾아보십시오! 모든 유물의 발견은 우연한 제보로 발견, 발굴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 조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유적은 임진왜란 때, 왜에 소실된 것을 증축을 했다거나 6-25사변 때 다시 소실되어 복구한 것이라거나, 가림막을 치고 지금도 복구 중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짝퉁을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주의 증거물들은 20 여 년 전만 해도 자료가 넘쳐 났는데, 지금은 모두 희귀본이 되어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고서점古書店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모두 친일파들이 고가에 매입해 소각하거나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랍니다.

 

 

우리가 중국 대륙의 정중앙,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지금의 한반도로 이주한 증거물도 예전엔 아주 많았습니다. 1913년에 발간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 ,

 

일본이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 에서 발간한 "조선이주수인초朝鮮移住手引草" 등은 이제는 구할 수가 없지만, 대륙 조선의 한반도 이주의 확실한 물증들입니다.

 

여러분이 확인할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집안에 있는 족보에는 수십 대에 걸친 조상들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선산先山에 가보시면, 어느 집안이나 시조始祖 묘와 5대조 묘부터 있을 겁니다. 대대로 선산先山이라면서 5대조 이상은 왜 없어 졌을까요? 이주 한지 불과 100여 년 남짓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반도의 이주로 생활은 궁핍하고 문화는 퇴보한 이주시대, 그 사이 서구 열강과 자칭 일제는 16년에 걸쳐 현재 중국사中國史25를 그들 입맛대로 요리하고 교정하여 새로운 중국에 놔두고,

 

17년에 걸쳐 조선사朝鮮史를 요리 교정하여, 거대 제국 조선을 한반도에 축소 고착화 시키고, 없는 왜사倭史는 일본서기日本書紀라는 창작물을 내세워 일본 열도에 이식시키며, 대륙 조선은 한, , 일 삼국三國으로 나누었습니다.

 

하여, 대한제국이 몰락한 1910년부터, 20여 년에 걸친 대륙 탈출 한반도 이주기인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쳐 일본의 제 2차 세계 대전 참전과 패망의 1940년대, 갑자기 찾아온 해방의 혼란과, 이념의 갈등으로 인한 남북 동란의 50년대를 마감한 1960년까지의 반세기 50년이 우리 민족의 최악의 암흑기였습니다.

 

 

찬란했던 조선의 문화와 문명이 갑자기 사라지고, 근대近代 조선朝鮮은 그동안 우리가 사진에서 보듯이 문화 문명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거지꼴인 것은 이와 같이 한반도로 이주해 와서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대륙 조선을 나눠 먹기에 쓰려고 만든 산스크리트어 사전은 역설적으로 산스크리트어가 우리말임을 증거 하는 결정적 물증이 되었고, 우리 문화를 찾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강상원 박사" 는 영국이 만든 산스크리트어 사전의 영문표기에 우리말 사투리를 대입한 해석으로 우리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필자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를 갔다 오면, 엄마가 아이의 숙제와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 바삐 동분서주 하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국민학교를 갔다 오면 엄마 일을 돕기에 바빴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신나는 일은 가끔 벌어지는 남의 잔치와 초상이었습니다. 일단 잔치나 초상은 바쁜 일을 멈추고,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가끔 볼만한 것도 있었습니다. 잔치는 시끄럽기만 했는데, 남의 죽음에 안 된 일이지만 초상이 벌어지면 이어지는 꽃상여의 등장과 구슬픈 선소리는 숙연하기도 하지만 아련하지만 묘한 가슴 설렘을 주곤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도 초상이 벌어지면 달려가 넋 빠져 보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혼자 걷기도 힘든 논두렁을 상여를 메고, 양쪽의 상여꾼들이 V자로 발을 모아 논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은 정말 볼 만한 묘기였습니다.

 

그 때 들은 구슬픈 선소리의 가사는 북망산이 어디 메냐~ 북망산을 어이 갈거나~하는 노랫말을 반복적으로 해서, 죽으면 누구나 북망산에 가나보다 생각하고, 북망산은 그냥 마을 뒷산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잔칫집에서 들은 "성주풀이" 라는 노래에서 북망산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도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

 

 

마침 동석했던 마을 훈장님께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北邙山이나 낙양성洛陽城에 가느냐고 여쭸습니다. 유식하셨던 훈장님은 웃으시며, 낙양성洛陽城의 십리十里 밖에 있는 산이 북망산北邙山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낙양성은 어디냐고 또 여쭸습니다. 중국에 있는데 여기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가까운 한양성에 묻지 않고,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묻어야 되느냐고 또 여쭸습니다. 그러자 훈장님께선 죽으면 더 멀리 가느니라!~ 라고, 말씀 하시곤 돌아 앉으셨습니다.

 

희한하고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양 서울에서 중국의 낙양성洛陽城 북망산北邙山까지는 거의 만리 길이라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상여를 메고 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저기 그 이유를 묻자,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미심쩍었지만 당시는 수긍할 수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상한 일들을 봤습니다. 훗날, 성주풀이의 가사처럼, 우리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이 중국 낙양성洛陽城 북망산北邙山에 묻혔음을 확인했습니다. 1927, 중국이 북망산을 개발하면서 숱한 묘지墓誌들이 발견 되었답니다.

 

묘지墓誌, 죽은 사람의 이름과 신분, 행적과 자손의 이름까지 자세히 기록한 글입니다.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연개소문의 세 아들과, 백제의 의자왕義慈王과 태자 부여 융, 흑치상지 장군 등, 그 후에도 숱한 묘지墓誌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추고 : 1927,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으로 나누고, 한국어는 우랄어족도 아니고 알타이어족도 아닌 그 상위 언어라고 규정했습니다. 헌데, 필자는 1970년대에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 학계, 교육계는 세상 돌아가는 데에 너무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우리의 문자 실담 범자는 옛 부터 신성한 언어, 고급 언어라 칭했습니다. 종자種子라고 해서 근본을 깨우친다고도 했고, 종자種字라고 해서 씨앗 글씨, 글씨의 씨앗이라고도 했습니다.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에는 수수께끼의 기념탑이 있습니다. 탑의 이름은 13도창의군탑十三道倡義軍塔입니다.

 

여자광대, 기생妓生, 가무歌舞, 미치광이, 노래 마디, 부르다, 번창하다, 인도하다는 뜻을

 

옳다, 의롭다, 바르다, 선량하다, 착하다, 순응하다, 맺다, 해 넣다, 섞다, 혼합하다, 간사하다, 옳지 않다,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의리義理, 우의友誼, , 의미意味, 의의意義,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정의에 합당合當한 행동行動, 의로운 일, 명분名分, 법도法道, 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의로 맺은 친족 관계關係, 의리義理의 관계關係, 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인공적인 것, 가짜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창의倡義, 국난을 당했을 때에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13도창의군탑十三道倡義軍塔, 190711월 망우리 일대에서 13十三道 창의군倡義軍 군사장 허위가 이끄는 선발대 300명이 서울로 진격하려다,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혈전을 치른 것을 기념하고, 항일 의병의 구국 혼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 동아일보사가 3·1운동 유적보존 운동의 하나로 유적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도 양주에 거점을 둔 13十三道 창의군倡義軍은 총 48, 1만 여명에 이르는 전국 연합부대로서,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추대하여 통감부를 격파하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수수께끼는, 이때 편성된 13도 창의대진소의 부서입니다. 13十三道는 고종 33년인 1896년에, 경상, 전라, 충청, 펑안, 함길을 남북으로 나누어 기존 8도에서 13도가 된 것입니다.

 

하여, 만주와 연해주에서 창설되어 러시아에 의해 해체된 유인석 도총재의 13도 의군도 위의 체제로 조직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3도창의군 총대장 이인영 그 배하에

 

호남(전라)창의대장 문태수文泰洙, 호서창의대장 이강년李康秊, 교남창의대장 신돌석申乭石, 진동(경기,황해)창의대장 허위許蔿, 아장 박정빈朴正斌, 관동창의대장 민긍호閔肯鎬, 관서창의대장 방인관方仁寬, 관북창의대장 정봉준鄭鳳俊등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두 대륙에서 쓰는 단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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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천문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의 많은 연구 자료가 있으니,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직접 공부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은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그레샴의 그레샴 법칙처럼 종종 거짓은 진실을 그 사실을 거짓이라는 거품으로 덮어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거짓으로 덮는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은 언젠가는 거짓이라는 거품이 꺼지고 나면, 만천하에 그 진실을 스스로 명백히 드러내어 밝히게 마련이니까요. 진실과 기름은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역사여歷史與 지명지地名之 위치재位置在 생명야生命也"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역사여歷史與 - 역사와 더불어, 지명지地名之- 지명과, 위치재位置在 - 그 위치가 서로 맞아야만, 생명야生命也 - 그 역사는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고고학자로 유명한 구석기 영웅, 후지무라 신이치라 하는 자는 우리나라의 유물을 일본 곳곳에 파묻어 두고서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파내어 일본의 유물이라며, 호들갑을 떨다가 고고학계에서 명망과 권위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유구한 세월 동안 찬란하게 꽃 피웠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 그들을 능가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 진실을 덮는 것,

 

일본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 등, 작금의 강대국들이라 불리는 그들 나라들과, 이 나라의 친일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 진실을 영원히 감추는 것, 이것이 그들의 비밀이자 그들의 공통점인 것입니다.

 

 

 

후지무라 신이치에 대한 참고 자료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many0203&logNo=30165119578

 

http://cafe.daum.net/yongbong1/8qjf/50?docid=181204163&q=%C8%C4%C1%F6%B9%AB%B6%F3%20%BD%C5%C0%CC%C4%A1&r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