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
-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제서(齊書)의 왕경즉전(王敬則傳)에 나오는 '왕경즉왈(王敬則曰) 단공삼십육책(檀公三十六策) 주위상계(走爲上計)' 즉, '단공(檀公)이 말한 36가지의 책략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계책이 주위상(走爲上)이다.'라는 말이 줄어서 '삼십육계(三十六計)'가 되었다고 한다.
"삼십육계 줄행랑이 상책(上策)"이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민가에 널리 퍼진 유명한 삼십육계는 1941년 중국 섬서성 빈주에 있는 한 고물상에서 필사본으로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
발견 당시 매우 낡고 오래되어 뒷장이 떨어져나가 끝부분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하였다고 하며, 이후 석판으로 복사하여 전문가에 전해졌고, 그 후 1973년 삼십육계(三十六計) 금역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삼십육계를 지은 이는 단공(檀公) 또는 단도제(檀道濟, 420-479)라 불리는 인물로,
그는 남북조 시대 때 송나라 무제의 심복으로 북위와의 30여 차례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어 후에 개국공신이 된 인물로 단공이 한창 활동하던 시대인 송(宋)의 3대 문제는 자신의 친형 둘을 죽이고 왕에 즉위한 인물이다.
단도제(檀道濟)는 전투에 아주 능한 인물이었는데, 어찌 된 연유인지 그는 전투(戰鬪)를 하다가 불리하면 도망치는 장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실은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한 후, 다시 공격하여 전투를 늘 이기곤 했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이 나온 것은 아마도 삼십육계 중, 마지막 계책인 주위상(走爲上)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시대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유능한 정치인 장군이 되기 위해선, 중상모략(中傷謀略) 위계(僞計)가 유달리 필요했던 시대였는데,
단도제(檀道濟)는 지략(智略)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그는 문제가 자신의 형을 죽이는 정변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우지만, 후에 단도제의 명성과 단도제가 지닌 실력을 두려워한 문제(文帝)에게 결국 살해되고 만다. 단도제가 문제의 음모에 빠져 죽기 전
자신을 만리장성(萬里長城)에 비유하여 "내괴여만리장성(乃壞汝萬里長城). 지금 너희들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려 하느냐! "라고 고함을 친 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단도제(檀道濟)가 죽고 난 다음, 실제로 송(宋)나라는 북위로부터 끊임없이 침공을 받았다. -
★ 삼십육계(三十六計) ★
전쟁(戰爭)은 흔히 국가(國家) 대(對) 국가(國家) 간에만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의 실생활도 단지 총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어찌 보면 실은 전쟁터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오로지 상대(相對)를 이기기 위한 병법(兵法)으로, 자신의 인성(人性)을 갈고 닦는 수신서(修身書)로는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은 못 되나, 삼십육계를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미리 알아두면, 살아가면서 상대의 교묘(巧妙)한 계략(計略)이나
중상모략(中傷謀略)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거나, 혹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난관(難關)을 대처(對處)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에게 닥친 풀기 어려운 난국을 이 삼십육계(三十六計)를 이용하여, 스스로 헤쳐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을 당하였을 때, 자신이 지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일러,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며, 어떠한 일에 있어 자신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다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바라는 뜻과 전혀 다른 결과(結果)가 나오면, 자신의 능력(能力)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하늘의 숙명(宿命)으로 생각하시고, 그 결과(結果)를 겸허(謙虛)히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육투(六套) 육계(六計)로 나뉘어 총 36계(計)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중유술(數中有術), 술중유수(術中有數)라 불립니다. 즉, 수(數) 중에 술(術)이 있고, 술(術) 중에 수(數)가 있다는 뜻이며, 투(套)는 짓거리 투(套), 버릇 투(套)라고 하여, 매사에
상투적(常套的)이라고 표현할 때 흔히 쓰이듯이 늘상 하는 짓거리처럼 아주 하찮은 행동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이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정치(政治), 외교(外交), 사업(事業), 처세(處世) 등에 있어 전략(戰略)과 전술(戰術)로 널리 이용되기는 하지만, 절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서(修身書)는 아니니, 삼십육계(三十六計)를 나에게 숨겨 놓은 상대방의 숨어 있는 수(數)를 읽는 정도로만 참고하시면 가장 무난할 듯하며, 기존(旣存)에 널리 알려진 해석(解釋)과 새로운 해석을 함께 달아 놓았으니 판단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삼십육계(三十六計)
제 1투(套) 승전계(勝戰計) - 상대를 이길 모든 조건이 충분히 구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쓰는 계책
제 01계(計) 만천과해(瞞天過海) - 임금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 (상대방을 속여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놓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상대방을 속일 때는 상대방 자신이 속는지도 모르게 하라.)
제 02계(計) 위위구조(圍魏救趙) -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한다. (상대를 추켜 세워 우쭐하게 하여 상대가 방심하면 내 목적을 이룬다.)
제 03계(計) 차도살인(借刀殺人) - 남의 칼을 빌려 상대를 죽인다. (다른 이의 능력이나 지혜 등을 이용하여 상대를 누른다.)
제 04계(計) 이일대로(以逸待勞) - 편안히 쉬면서 상대를 지치게 하라. (상대의 공격에 무반응을 보여 도리어 상대를 지치게 한다.)
제 05계(計) 진화타겁(趁火打劫) - 불이 나면 얼른 쫓아가 두들겨 패서 상대의 것을 빼앗는다. (기회가 오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든다.)
제 06계(計)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치고 서쪽을 친다. (상대측에 혼란을 조장하여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나서 나의 실익을 취한다. 이 성동격서는 지금도 국가나 기업 등, 여러 곳에서 아주 흔히 쓰이고 있는 병법 중의 하나입니다.)
제 2투(套) 적전계(敵戰計) - 세력이 서로 엇비슷할 때, 계략(計略)을 써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 후에 쓰는 계책
제 07계(計) 무중생유(无中生有) - 없는 가운데 있게 하라. 속이려면 끝까지 속여라. (상대를 속이면서도 끝까지 속이지 않는 것처럼 해라.)
제 08계(計) 암도진창(暗渡陳倉) - 몰래 길을 건너 창고를 점령한다. (상대 몰래 상대의 중요한 것을 빼앗는다.)
제 09계(計) 격안관화(隔岸觀火) - 언덕을 사이에 두고 불구경을 한다. (상대에게 내분을 일으켜 놓고 나서, 나의 실익을 취한다.)
제 10계(計)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 (몰래 계략을 꾸며 상대를 방심하게 한 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제 11계(計) 이대도강(李代挑彊) - 자두나무 대신 복숭아나무를 쓰러뜨린다. (상대의 요구를 부득이 들어줘야 할 경우에는 내가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피해가 적은 것을 희생시킨다.)
제 12계(計) 순수견양(順手牽羊) - 차례가 되어 손에 쥘 수 있다면 양이라도 취하라. (아무리 조그마한 하찮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손에 넣는다.)
제 3투(套) 공전계(攻戰計) - 공격이 최대의 수비로 치밀한 작전을 세워 상대를 공격하는 계책
제 13계(計)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라. (상대방의 의중을 모를 때는 변죽을 울려, 상대의 숨은 의중을 알아낸 다음 대응을 한다.)
제 14계(計) 차시환혼(借尸還魂) - 시체를 빌려서라도 마음을 돌려라. (다른 이의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빌려서라도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고 방심하게 한 후, 목적을 달성한다.)
제 15계(計) 조호이산(調虎離山) - 범을 길들여 산에서 떠나게 한다. (상대의 유리한 위치를 감언이설로 꾀어 상대의 그 유리함을 버리게 한다.)
제 16계(計) 욕금고종(欲擒故縱) -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고의로 놓아준다. (상대로부터 취할 이익이 최고치가 될 때까지, 최대한 기다렸다가 최대한의 이익을 취한다.)
제 17계(計) 포전인옥(抛塼引玉) - 벽돌을 던져 구슬을 끌어낸다. (상대에겐 나의 하찮은 것을 주고, 상대방의 유리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든다.)
제 18계(計) 금적금왕(擒賊擒王) - 도적과 그 도적의 왕까지 사로잡아라. (문제가 되는 원인은 물론 그 문제의 결과까지도 없앤 다음 대응을 한다.)
제 4투(套) 혼전계(混戰計) - 싸움이 뒤섞여서 상대와 세력 분별이 힘들 때 쓰는 계책
제 19계(計) 부저추신(釜底抽薪) - 가마솥 밑에 땔나무를 빼라. (상대가 나보다 강할 때는 상대방의 강한 힘, 그 원천을 제거한 후, 대응한다.)
제 20계(計) 혼수모어(混水摸魚) - 물을 흐려서 물고기가 더듬거리게 하라. (상대방에게 혼란을 조장하여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한 후, 목적을 취한다.)
제 21계(計) 금선탈각(金蟬脫殼) -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소리 없이 하라. (상대방의 취할 것 중에서 실속 없는 것은 버리고, 실속 있는 것만 차린다.)
제 22계(計) 관문착적(關門捉賊) - 도둑을 막으려면 문을 꼭 잠근다. (상대를 계략으로 유인하여 꼼짝 못 하게 만든 다음, 내가 의도한 대로 상대방을 쥐락펴락 움직인다.)
제 23계(計) 원교근공(遠交近攻) - 멀리 있는 것은 사귀고 가까운 곳은 친다. (나중에 해결해도 될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급한 문제부터 먼저 해결한다.)
제 24계(計) 가도벌괵(假道伐虢) - 남의 길을 빌어 성을 친다. (상대의 것을 빌린 다음, 내 것으로 만든다.)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치욕스러운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오욕의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길 바라십니까?!
조선시대(朝鮮時代) 때, 왜(倭)는 삼십육계 중, 24계인 가도벌괵(假道伐虢)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켜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시도를 하다가 실패를 하였지만, 나중에 결국 치욕적인 을사늑약으로 인한 경술국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가 병인양요(丙寅洋擾), 신미양요(辛未洋擾) 등, 외세의 열강에 의해 침략을 받던 조선(朝鮮) 말(末) 무렵, 일본과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맺기 불과 4개월 전인 1905년 7. 27일 일본과 미국(美國)은 비밀리에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국의 독점적 지배권을 상호 인정하며, 조선은 일본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대외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일명 "가츠라 테프트" 밀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고종황제는 미국에는 이승만을, 헤이그에는 이준 열사를 밀사로 파견해서 어려운 국난을 타개하고자 했으나, 미국과 일본에 의해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그리고 일본은 고종황제가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이유를 들어 고종황제의 양위(讓位)를 요구했지요.
즉,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지요. 당시 미국에 밀사로 파견되었던 이승만은 훗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지요. 하지만 이승만은 미국에 입국할 때 여권 난에 자신의 국적을 일본으로 기재할 만큼 철저한
친일(親日), 친미(親美)적인 인사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불교를 와해시키는 일에 가장 앞장을 섰던 인물이 이승만이기도 하고, 하와이에 머물던 당시에는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우리 독립군 명단을 미국에 넘기고,
그 대가로 하와이 독립군의 군자금을 착복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도 이런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이런 미국을 아직도 우리의 변치 않는 우방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미국은
우리나라의 국익(國益)을 위해서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늘 미국의 이익이 우선인 나라이며,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이후 1905년 11. 17일 조선은 일본에 의해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맺었고, 우리나라는 미국의 암묵적인 묵인하에 일본에 의해 36년 동안 굴욕적인 지배가 이루어졌던 것이지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비밀리에 맺어진 "가츠라 테프트" 밀약은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면서 깨어지게 되었고,
미국은 자국에 불어 닥친 경제공황에서 벗어나고자 그 타개책(打開策)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려 했던 미국은 자국 내에서 반전 운동이 벌어지게 되자, 이에 대한 명분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도록
유도했고,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할 당시, 미국은 사전에 그 정보를 도청과 암호해독을 통해 미리 알고서도, 오히려 장병들을 거의 휴가를 보내고, 항구에는 낡은 배를 정박시켜 놓았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 6, 25사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도 군인들을 휴가를 보냈었다고 하지요.
어쨌든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은 미국 내에서의 반전 목소리를 잠재우고,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투하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 내었고, 미국은 그들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조건으로
당시 독립운동을 벌이던 조선과 중국인들을 상대로 일본이 잔인한 생체실험(生體實驗)을 벌이던 731부대, 일명 마루타 부대의 인체실험 기록을 전부 미국이 가져갔으며, 우리 선조들과 중국인들의 슬프고도 아픈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미국, 그 선진 의료기술(醫療技術)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731부대를 독립군 부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더군요. 심지어 내 아들은
군 장교 출신인데도, 이 731부대를 모르더군요. 왜! 이런 사실을 모르냐고 물어보니 학교에서도 그런 사실을 가르쳐 준 적도 없고, 심지어 군대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내가 알려 줘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후대(後代)에게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올바르게 가르치려 노력하지 않은 그 대가이겠지요. 하긴 우리나라에서 국무총리도 역임했고, 서울대 총장을 지낸 어떤 분께서도 이 731부대를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나라의 독립군 부대라고 말하고 있는데, 더 말해 무엇하겠는지요.
우리나라가 을사늑약 이후로는 100년, 일본으로부터 해방(解放)이 된 이후로부터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政治), 문화(文化), 언론(言論), 교육(敎育), 역사(歷史), 경제(經濟), 금융(金融)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본의 지배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며, 해방 이후 일본의 뒤를 이어
이 땅에 들어온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는 정치(政治), 문화(文化), 언론(言論), 교육(敎育), 역사(歷史), 경제(經濟), 금융(金融) 군사 등,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미국의 지배하에 그리고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으며, 우리나라의 진정한 해방과 독립은 아직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혹, 전쟁(戰爭)과 전란(戰亂)이 지닌 뜻의 차이를 알고 계시는지요?! 전쟁(戰爭)은 국가(國家) 대 국가(國家) 간의 전투(戰鬪)를 전쟁(戰爭)이라고 하며, 전란(戰亂)은 국내(國內)에서 동족끼리 서로 간의 이념 차이로 일어난 내란(內亂), 내전(內戰)을 전란(戰亂)이라고 합니다.
이제 전쟁(戰爭)과 전란(戰亂)의 뜻을 알았으니, 아편전쟁(阿片戰爭)과 임진왜란(壬辰倭亂), 병자호란(丙子胡亂), 홍경래의 난(亂), 그 말들의 차이에 이상함을 느끼시겠지요! 6-25 동란(動亂)을 처음에는 한 영토에서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이라 하여, 6-25사변, 또는 6-25동란(動亂)이라고 했다가,
남북이 따로 정부를 세우고 유엔에서 국가로 공인을 받으니까 이제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이다고 해서, 전쟁(戰爭)이라 하여 요즘에는 6-25전쟁(戰爭)이라 부르고 있지만, 6-25동란(動亂)이라 불러야 하지요.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워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의혹투성이라고 하지요. 당시, 왜(倭)라고 부르던 지금의 일본과 조선(朝鮮)이라 부르던, 우리나라 사이에 벌어진 임진왜란은 국가(國家) 대(對) 국가(國家) 간에 일어난 전쟁(戰爭)이 아니라, 실은 동족끼리 서로 간의 이념 차이로 일어난 내전(內戰)이라 하지요. 임진(壬辰) 년(年)에
왜족(倭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해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고, 병자(丙子) 년(年)에 호족(胡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해서 병자호란(丙子胡亂) 즉, 왜족(倭族)과 호족(胡族)은 같은 영토, 조선(朝鮮) 안에 있었고 같은 민족(民族)끼리, 이념의 차이로 일으킨 반란이었지, 국가(國家) 대(對) 국가(國家) 간에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다고 하지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신라, 백제, 고구려, 조선(朝鮮)이 지금의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라, 고구려, 백제는 한반도가 아닌 모두 중국에 있었다고 하지요.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역사는 역사가 논하는 지리와 그 위치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지요.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워 한반도(韓半島)에 있던 나라로 알고 있는 조선(朝鮮)과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개명한 고종황제는 여기 한반도 안에 있은 것이 아니라, 실은 중국대륙(中國大陸)의 정 중앙(中央)인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 즉, 지금의 "서안(西安)"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大英帝國)'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누비며, 식민지를 건설하여
막강하던 국력을 자랑하던 대영제국이 왜! 오늘날의 영국처럼 몰락했느냐! 하면, 중국의 청나라와 아편전쟁을 벌이고 난 후, 그 후유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인도(印度)를 식민지로 거느린 그런 막강한 대영제국과 그 연합국들로 이루어진, 연합군들과 혈혈단신 홀로 몇 년간에 걸쳐
전쟁을 벌인 끝에, 청(淸)나라가 몰락했다고 하며, 그 청(淸)나라가 우리나라였다고도 하는데, 당시 청나라는 단순히 영국과 아편전쟁(阿片戰爭)을 벌인 것이 아니라, 영국(英國)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연합군,
그 연합군들은 연합군(聯合軍)의 주축이었던 영국과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던 지금의 미국, 그리고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나라들로 이루어진 연합군과 전쟁을 치렀다고 하지요. 그들은 청나라와의 아편전쟁에서 이긴 후, 승전(勝戰) 배당금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끼리 승전 배당금을 더 차지하려고 서로 다툼을 한, 그 후유증 때문에 대영제국(大英帝國)이 지금처럼 몰락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그 나라를 정복하고 나면, 그다음엔 무엇을 하는지 혹, 알고 계시는지요?! 반드시 그 나라의 역사(歷史)와 국어(國語)와
음식문화(飮食文化)를 비롯하여 달력 및 도형량 등,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비하하며, 그 나라의 문화를 끊임없이 말살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지요. 그 방편으로 반드시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지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지요? 그래야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꾸준하게 펼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말해 뺨치고 얼르고 달래는 격이지요. 지금도 우리나라엔 구한말 우리나라 조선을 침략한 미국과 다른 나라의 선교사(宣敎師)들이 세운 병원들과 학교들이 많이 있지요. 그리고 친일파의 후예들이 세운 학교들도 엄청나게 많이 있지요.
달력이라 하는 책력(冊曆)이나 역법(曆法), 도형량(圖形量) 등은 단순한 측량단위가 아니라, 그 나라가 지닌 파워(Power) 즉, 국력(國力)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도형량은 인치, 야드, 파운드 단위를 쓰는 영국과 미터, 제곱미터, 킬로그램 단위를 쓰는 미국이 있지요.
우리 선조들은 예전부터 리(里), 척(尺), 촌(寸), 근(斤), 관(貫), 평(平)이라고 하는 척관법(尺貫法)을 썼지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형량(圖形量)도 미국의 도형량과 함께 쓰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척관법은
아예 사용하지도 못하게 법으로 금해 놓고, 미국의 도형량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 놓았지요. 왜! 일까요? 우리 선조들은 척(尺), 촌(寸), 근(斤), 관(貫), 평(平)이라는 척관법을 가지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화를 이루었는데 말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어는 제대로 가르칠 생각은 안 하고, 일본이 지배하던 식민시절, 일본의 자금지원을 받은 친일 어용 국어학자인 주시경이 왜곡시켜 놓은 뜻글자이자 소리글인 한문(漢文)이라 부르는 우리의 글 훈민정음에서 뜻글자인 문자는
도외시(度外視)하고 오직 소리글, 한글만 우리글이라 우기며, 을사오적 이완용의 조카이며, 친일파 역사학자였던 서울대 교수 이병도가 쓴, 왜곡된 역사책으로 우리의 역사를 배우는 것도 모자라, 지금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국어를 앞장서서 스스로 왜곡하고 있는 이들이 있지요.
게다가 이병도의 조카는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지요. 그들은 한문(漢文)이라 하는 우리의 글을 중국 글이라 우기며. 그들의 문자(文字)를 배우는 건 중국 사대주의(事大主意) 사상(思想), 모화주의(慕華主意) 사상에 빠져 있어서 그렇다고 하면서 문자의 뜻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려 하는데, 그들이 저렇게 우기는 이유는 실은 문자의 뜻이 알려지게 되면,
그들의 거짓말이 드러나게 되어 국민이 그들의 통제에서 벗어날까 두려운 나머지 그 뜻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지요. 설령, 문자(文字) 즉, 한문(漢文)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뜻을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지요.
그런데, 웃긴 건 그런 그들은 정작 영어 만능주의, 영어 사대주의에 빠져 있단 사실이지요. 물론, 지금은 영어가 거의 세계 공용어나 다름없지만, 국민 누구나 영어를 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제 나라의 국어와 역사는 스스로 왜곡 축소하여 내팽개치고, 영어를 유치원 때부터 배우게 하는 것도 모자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사회에 나와서까지 영어를 배우는 영어 광풍이 불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본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킬 당시 조선(朝鮮)을 치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이 명(明)나라를 치러가는 길을 빌려 달라는 일명, 가도벌괵(假道伐虢)이라는 명분이었는데, 지금의 일본에서 뱃길로 바로 명나라로 가면
훨씬 더 가깝고 간단히 해결될 것을, 그 먼 한반도의 육로를 돌아, 더구나 조선과 전쟁을 치르면서 명(明)나라를 치러가게 되면, 그들의 전투력은 거의 상실한 채, 명(明)나라를 치러가게 되는데, 왜! 그래야만 했는가?! 거기엔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이 있다고 하지요. 즉, 왜(倭)와 조선(朝鮮)은
지금의 일본과 한반도의 조선(朝鮮)이 같은 영토 안에 있었고, 왜(倭)에서 명(明)나라를 가려면 반드시 조선(朝鮮)을 경유해야만 명(明)나라에 갈 수 있는 반증이라고 하지요. 명나라를 치러가려 하니 길을 빌려 달라는 것은 명분이었고, 실은 조선을 치기 위함이었던 것이라 하지요.
왜(倭)는 조선(朝鮮)이 다스리던 수많은 나라 중, 그 하나로 왜(倭)는 오랜 세월 동안, 변방에서 수천(數千) 년(年) 동안, 가까이는 7세기에 걸친 막부시대(幕府時代)를 대륙(大陸) 조선(朝鮮)의 지배를 받으며 조선의 변방을 수비하면서 지냈다고 하지요. 막부시대(幕府時代)란, 말 그대로 천막을 치고
경비를 서던 시대란 뜻이지요. 더군다나 왜(倭)는 대륙 조선의 지배를 받는 동안, 조선(朝鮮)의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들에게 그들 자존심에 상처를 엄청 많이 받았었고, 그래서 왜倭가 그에 대한 반감으로 반란(임진왜란)도
일으켰던 거고, 그러다가 나중에 그들은 그들 자존심 회복의 일환(一環)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의 일본(日本)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대륙조선(大陸朝鮮)에서 벌어진 서구 열강(列强)들의 조선 나누어 먹기 경쟁에
끼어들었다가, 서구열강과의 다툼에서도 밀리고, 중국 공산당과의 다툼에도 밀려, 중국대륙에서 지금의 일본 열도로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서구 열강들에게 노쇠할 때로 노쇠(老衰)한 조선(朝鮮)과 그 조선의 뒤를 이은 유약(柔弱)한 나라, 신생 대한제국(大韓帝國)은 서구(西區) 열강(列强)들에겐 너무나 탐나는 제국이었다고 하지요. 금 매장량은 물론,
모든 물산(物産)이 풍부했던 대륙조선(大陸朝鮮)을 나누어 먹기 위한, 서구 열강들의 음모에 따라, 대륙조선(大陸朝鮮)은 아귀다툼 속에 결국 공산화(共産化)가 되어 버리고, 자칭 일제(日帝)도 중국 공산당에 밀려 지금의 일본 열도로 쫓겨나면서 대륙조선(大陸朝鮮)과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후예(後裔)
대한제국(大韓帝國)은 중국대륙(中國大陸)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고, 한반도(韓半島)의 조그만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하지요. 손문(孫文)도 원래는 대륙조선(大陸朝鮮)의 독립군이었지만, 1912년 중화민국을 선포하여 약칭을 중국으로 하였지요. 그래서 대륙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中國)이 정식국호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대륙조선(大陸朝鮮)은
서구(西區) 열강들의 대륙조선(大陸朝鮮) 나눠 먹기 음모에 따라,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후예, 대한제국(大韓帝國)은 몰락하고, 통치와 치안의 부재(不在)에다가, 국공(國共) 내전에 항일투쟁까지 겹쳐, 전쟁과 난리로 사람 살 곳이 못 되었다고 하지요. 대륙에서 쫓겨난 일본은 마지막 발악의 음모로 무주공산 마냥
비어 있던 한반도(韓半島) 안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차려 놓고, 대륙조선(大陸朝鮮)의 나눠 먹기에 끼어보려고 대륙 조선인들의 한반도(韓半島) 이주(移住)를 유인(誘引)하였다고 하지요. 당시, 왜(倭)가 내놓은 이주 유인책(誘引策)으로는, 조선(朝鮮)을 팔아먹는 친일파(親日派)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나눠주고, 곧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황궁과 대륙조선(大陸朝鮮) 황실(皇室)도 천도(遷都)할 것이라는 유언비어도 퍼트리며 짝퉁 경복궁도 짓고 하여, 마치 조선황실(朝鮮皇室)이 한반도(韓半島)로 옮길 양, 사기를 쳤다고 하지요. 그리고 한반도를 구획 정리하여, 행정구역도 팔도(八道)로 나누고,
이주민(移住民)들이 낯설지 않게 여기저기에 (大陸朝鮮)의 흉내를 내어 대륙의 지명(地名)을 따다 팔도(八道) 곳곳에 지명도 붙이고 하여, 대륙 조선의 축소된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지금의 한반도(韓半島) 안에
중국(中國)과 같은 지명(地名)을 지닌 곳과, 같은 성(姓)을 쓰는 성씨(姓氏)들이 있는 거라 하지요. 어쨌든 유언비어의 효과도 있고, 살기도 힘든 판에 땅도 무상으로 준다고 하고 이주비도 준다는 말에 이삿짐을 싸는 양반들이 늘어나고, 양반들에게 고급 공예품을 제공하던 장인(匠人)들과
각 문화의 명인(名人)들도 덩달아 한반도로 이주를 하였지만, 조선황실(朝鮮皇室)은커녕, 대한제국(大韓帝國)도 한반도로 이주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럼, 지금의 유적과 유물들은 다 무엇이냐고요? 단언(斷言) 컨데! 모두 다 짝퉁이라고 하지요. 모든 유물은 우연한 제보로 발견,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다 조작(造作)이라는 얘기라지요. 모든 유적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倭)에 의해 소실된 것을 증축했다거나, 6-25사변 때 소실이 된 것을 복구한 것이라거나 하고 있지요.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한반도 이주의 증거물들은 30여 년 전만 해도 자료가 넘쳐 났는데, 지금은 모두 희귀본이 되어
구할 수가 없다고 하지요. 왜냐면 그건 친일파들이 그런 자료를 보기만 하면 고가에 매입해 모두 소각하거나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중국대륙(中國大陸)의 정중앙,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지금의 한반도로 이주한 증거물로는 1913년에 발간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나,
당시 일본이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착취하기 위하여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에서 발간한 '조선이주수인초(朝鮮移住手引草)' 등은 대륙조선(大陸朝鮮)의 한반도 이주의 확실한 물증들이라고 하지요.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대륙조선(大陸朝鮮)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나라 이름을 바꾸고, 조선을 이어 다스리던 대한제국(大韓帝國) 말(末) 무렵, 당시 아시아는 모두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이었지요. 지금도 한반도의 조그만 땅덩어리 안에서도 지역마다 말의 발음이 조금씩 차이가 나듯, 같은 한자(漢字), 즉, 같은 문자(文字)를 쓰면서, 문자 음(音)은 비록 다르게
발음(發音)했지만 뜻은 통했지요.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는 중국 내에서 같은 뜻이나 서로 다르게 불리어지는 그런 문자(文字)의 음과 뜻을 정비하여 새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반포(頒布)하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고종(高宗) 황제(皇帝)께서 나라 이름, 국호(國號)를 새로 지으면서, 나라 이름 앞에
큰 대(大) 자(字)를 붙여,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이름을 짓는데, 청국(靑國)도, 일본도. 당시 강대국이라 하는 나라의 그 어느 나라도 간섭을 하지 않았지요.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이 대(大) 자(字)의 뜻을 몰라서 그냥 있었을까요? 아시아 역사상, 나라 이름 앞에 공식적으로 대(大) 자(字)를 넣어 나라 이름을 지은 왕은 고종(高宗) 황제(皇帝)가 유일하다고 하지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중국대륙(中國大陸_에는 세워졌다가 몰락한 왕조가 수없이 많이 있었지요. 헌데 이 나라들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대략 2~30년에서, 2~300년 정도를 유지하다가 사라졌지요. 정통도 아니고, 전통을 계승한 나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라 이름은 모두 다, 외자를 썼지요. 하(夏), 은(殷), 주(周), 그리고 춘추(春秋) 시대(時代)의 제, 진, 초, 오(吳), 월(越),
전국(戰國) 시대(時代)의 제(齊), 조(趙), 진(秦), 연(燕, 위魏), 초(楚), 한(韓), 심지어, 중국(中國) 천하(天下)를 처음으로 통일했다고 하는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 유방의 한(漢), 왕망의 신, 삼국(三國) 시대(時代)의 위, 촉, 오를 비롯하여, 남북(南北) 조 시대의 오호 16국과 수(隨), 당(唐)에 이어 오대십국, 남북 송(宋) 시대, 원(元)과 명(明) 그리고 청(靑)나라까지
전(前)과 후(後), 동(東)과 서(西), 남(南)과 북(北) 등, 시기(時期)와 지역(地域)을 구분하기 위해, 앞에 붙이는 것 외에는 모두 외자를 썼지요. 우리는 거기에 나라를 붙여서 그들 나라 이름을 불렀지요.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한(漢)나라, 당(唐)나라, 송(宋)나라,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靑)나라, 뿐만 아니라 저 멀리 서구까지 넘봤던 몽골 제국도
우리에게는 그저 원(元)나라일 뿐이었지요.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아메리카(United States America)"라 하는 나라를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미국이라 부르고, “더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그레이트 브리텐 엔 노르덴 아일랜드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고 하는 나라는
영국이라 부르고, 러시아는 우리 마음대로, 아라사(俄羅斯), 혹은 노서아(露西亞), 또는 노국(露國)이라 부르고, 프랑스는 법국(法國)이라 부르고, 지금은 독일이라 부르는 저먼(German), 도이칠란트(Deutschland)라 부르는 나라는 덕국(德國)이라 불렀지요. 당시, 세계열강이라 부르는 그들 나라 이름을
우리가 부르기 쉽게, 외자로 지어 나라 국(國)자를 붙여 그들 나라를 불렀는데, 당시에는 아무도 그에 대한 이의를 달지 않았지요. 대체 왜?!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그들 나라 이름을 마음대로 지어 부르는 것도 모자라, 고종(高宗) 황제(皇帝)께서는 대한(大韓)이란, 두 글자로 나라 이름을 짓고, 그 뒤에 제국(帝國)이란 명칭도 붙였지요.
다들 잘 알다시피 제국(帝國)이란,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 외에, 자신의 정치력이나 군사력이 미치는 또 다른 나라가 있을 때만 붙이는 것이지요. 제국(帝國)의 뜻을 다들 몰라서 고종도 붙이고, 일본과 청국과 영국은 그 뜻을 몰라서 그냥 내비 뒀을까요? 우리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역사로는
당시 조선의 고종은 변방의 조그만 땅덩어리 한반도 조선, 그것도 미약하기 짝이 없는 힘없는 나라의 일개 왕(王)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그런 힘없는 나라의 왕이 거창하게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나라 이름을 짓는데, 일본이나 청국, 그리고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당시 강대국들이라 하는 나라들이 왜! 가만히 내버려 두었을까요?
그들이 무식해서? 아니면 남의 나라 이름을 짓는 것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 간섭하면 안 되기에 매너를 지키느라? 그도 아니면 간섭하면 혼날 까봐? 당시 그 나라들은 우리나라를 서로 내정 간섭하느라, 하나같이 다들 무척 바빴다고 하던데…, 거기에 고종께서는 한술 더 떠서 왕(王)이 아닌, 황제(皇帝)라는 명칭도 사용하여 도장, 옥새(玉璽)까지 파서 사용했지요.
근데 일본도 청나라도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 당시 강대국들이라 하는 그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왕과 황제를 구별하지 못해서? 독일은 그런 고종을 킹(King), 왕(王)이라 호칭(呼稱)하지 않고, 황제(皇帝)를 뜻하는 카이저(Kaiser)로 호칭했다고 그들의 공식문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지요.
왜! 일까요? 영국(英國)의 여왕에겐 여왕이라는 뜻의 "퀸(Queen)"이라 호칭하면서. 일개 힘없는 나라의 왕(王)에 불과한 고종에게는 왜! 황제(皇帝)라는 뜻의 "카이저(Kaiser)"로 호칭했을까요? 왕들에게 급수(級數)가 있음을 몰라서 그랬을까요? 당시 우리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을 표기할 때, 한때 "The Corea"이라 표기하기도 했고, "The Chosun"이라 표기하기도 했다지요.
잘 아시다시피 "The"는 큰 나라를 부를 때, 맨 앞에 붙이는 것이라 하지요. 우리나라 “꼬레아(COREA)”가 아시아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서양의 유식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데. 정작 우리만 모르고 있다고 하지요. 우리나라 이름이 외국에서 "꼬레"라 불리는 것은 고려(高麗)의 영어 발음표기 "고려(Koryo)" 에서 전화(轉化)한 것으로, 외국인들은 "고려(高麗)"라는 발음이
잘 안 되어 "꼬레"라 발음하는 것이라 짐작된다고 주장을 하는 일부 유식?한 역사학자들도 있지만, “꼬레(CORE)"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부를 때 명칭(名稱)으로 아직도 유럽에서는 우리나라를 부를 때 "꼬레아(COREA)"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하지만 “코레(KORE)"나, "코리아(KOREA)"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라고 하지요. 우리가 KOREA라 부른 것은 얼마 되지도 않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것도 일본과 미국이 서로 짜고 "꼬레아(COREA)" 의 C를 K로 바꾸어 불렀고, 그래서 지금의 KOREA로 고착화 된 것이라고 하지요.
영어로 코아(core)의 뜻은 다들 잘 알다시피 가운데, 중요한, 중심의, 그런 뜻이라 하지요. 그들은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이라 하여, 거기에 지역, 구역이라는 뜻의 에리어(area), 그 에리어(area)의 약자인 "A"를 붙여서, "꼬레아(COREA)"라 불렀고, 지금도 서양의 일부 국가만 빼고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아직도 COREA로 표기하고 있다고 하지요.
조선(朝鮮)의 후예,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제(黃帝), 고종(高宗)은 그동안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 알듯 절대 무능했던 군주(君主)가 아니었습니다. 나라 이름에 큰 대(大) 자를 넣고, 거기다가 제국(帝國)까지 넣은 아주 배포 크고 유능한 군주였지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시지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역사학계에서는 4세기 후반,
왜(倭 일본)의 야마토가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耶)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우리나라를 지배하였다는 식으로 설명들을 하고 있는데, 무슨 일본(日本)이 가야에 본부(本府)를 두고 신라와 백제와 가야를 다스리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는 맡을 임(任), 나라 나(那)의 그 뜻처럼,
본국(本國, 대륙조선大陸朝鮮)에서 파견되어 일본이란 나라를 맡아 다스리던 본부(本府)란 뜻이지요. 지사(支社)란 말이 있지요. 지사(支社)는 본사에 갈라져 나가 본사(本社)의 관할(管轄) 아래, 일정한 지역에서의 사무(事務)나 사업(事業)을 다루는 곳이란 뜻이지요. 지사는 본사가 관할하는 것이지,
지사(支社)가 본사(本社)를 관할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처럼 지나(支那) 또는 임나(任那)는 본국(本國)에서 갈라져 나가 일정한 지역의 나라(那羅)를 맡아서 다스리던 지사란 뜻이지요. 그리고 얼마 전 뉴스에서는 요즘 일기(日氣), 기상(氣象)이 우리가 예전부터 쓰던 24절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예전의 일기(日氣)가 요즘의 일기와 맞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24절기(節氣)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0년 전에 중국(中國) 황하(黃河) 지역(地域)에서 만들어졌는데, 중국에서 만들어진 그런 24절기를 지금의 한반도(韓半島)에 적용을 하기에 맞지 않는 것이라 하더군요. 요즘 지구의 날씨가 변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잘못된 일기(日氣), 절기(節氣)를 우리가 장장 2000년에 걸쳐 사용을 했다고요?! 중국의 그 황하(黃河) 지역은 우리 선조(先祖)들의 옛 역사가 있던 자리라고 하지요. 중국의 옛 도읍지(都邑地) 중, 그 하나였던 낙양(落陽), 우리가 죽으면 간다는 흔히 북망산(北邙山)이라 부르는 산은 낙양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을 북망산(北邙山)이라 하는데,
백제의 의자왕을 비롯하여 의자왕의 아들과 흑치상치 그들의 무덤이 거기에 있다지요. 그리고 우리가 요즘, 흔히 서울의 한강(漢江) 이북(以北)과 한강(漢江) 이남(以南)을 구분할 때 흔히 쓰는, 강남(江南), 강북(江北)이라는 말은 원래는 중국의 동정호(洞庭湖)를 기준으로 하여, 동정호의 북쪽을 호서(湖西), 동정호의 남쪽을 호남(湖南)으로 나뉘어 불렀던 말이라고 하지요.
그러다가 일본의 우리 민족 한반도 이주정책으로 우리 민족이 점차 한반도 안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서해(西海)를 누런 물이 흐르는 큰 강(江)이라 하여, 황강(黃江)이라 불렀고, 그 황강(黃江)을 기준으로 하여, 황강의 남쪽을 우리의 임금이 계시는 곳이라 하여, 중국(中國)을 강남(江南), 한반도는 강북(江北)으로 나뉘어 불렀다고 하지요.
그렇게 부르던 황강(黃江)은 이후에는 누런 물이 흐르는 바다라는 뜻의 황해(黃海)라 불리어지다가 지금은 서해(西海)라 부르고 있지요. 내가 어렸을 적, 중학교 시절, 배우던 역사책(歷史冊)과 지리책에서 지금은 남해(南海)라 부르는 바다는 남지나해(南支那海)라 불렀지요. 남지나해는 저 멀리 베트남까지의 바다를 남지나해(南支那海)라 했지요.
그리고 일본과 마주한 바다는 현해탄(玄海灘), 또는 동지나해(東支那海)라 불렀으며, 우리의 동해 바다는 동해(東海)라고 불렀으며, 서해(西海) 바다는 황해(黃海)라 표기하고 불렀었는데, 그렇게 부르던 명칭들은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없지요. 우리 선조들은 황해(黃海)를 누런 물이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황강(黃江)이라 부르고, 일본과 마주한 바다는
현해탄(玄海灘), 현해탄(玄海灘)의 현(玄)은 검다는 뜻의 검을 현(玄)이란 뜻도 있지만, 아득하게 멀다는 뜻의 아득할 현(玄),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인다는 뜻의 가물 현(玄)이란 뜻을 지니고 있지요. 부산에서 날씨가 좋은 날에 대마도(對馬島)를 바라보면, 아득하게 저 멀리 대마도(對馬島)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고 하지요. 그리고 탄(灘)은 여울 탄(灘)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강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아주 빠르고 급하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 부르지요. 일본과 마주한 바다를 아득히 저 멀리 대마도(對馬島)가 가물가물하게 바라다 보이며, 바다의 조류가 마치 강여울처럼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바다라는 뜻의 현해탄(玄海灘)이라 부르던,
우리 선조들의 배포(排布), 이제 좀 느껴지시는지요. 하긴,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간다는 저승, 그 저승을 뜻하는 명왕성(冥王星), 저승에 가면 누구나 처음 만나게 되는 첫 강(江)이란 뜻의 초강(初江), 명왕성과 "카론(Charon)"이라 부르는 위성과의 사이, 그 거리의 크기를 초강(初江)이라 부를 정도의 배포를 지니고 있는 우리 선조들에게 지구의 강(江)이나
바다 정도의 크기쯤이야 저승의 초강의 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우리 선조들의 배포(排布), 정말 상상도 못 하게 엄청나게 크고 표현도 참 멋지게 하지요! 서양 상인들이 아시아, 즉, 조선(朝鮮)에서 본격적으로 물건을 수입하면서 유럽시장에 충격을 준 물건이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도자기와 옻칠 가구라고 하지요. 그 주산지가 바로 꼬레, 꼬레아(COREA)였다지요! "차이나(CHINA)"의 뜻이 도자기(陶瓷器)인 것을 아시는지요? 영어 사전에서 (CHINA)의 뜻을 찾아보면 도자기(陶瓷器)로 나오지요. 인터넷에서는 안 나오고 오래된 종이 영어사전에서 찾아야만 나옵니다. 이것을 질이 아주 안 좋으신 일부 유식?한 학자님들께선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를 지나(支那)로 부르다가 후에 차이나(CHINA)가 됐다고 우기고 있지요. 일본(재팬 JAPAN)이 우리나라보다도 옻칠에 더 관심이 많은 건 알고 계시는지요? 일본은 우리나라 나전칠기 전문가들을 데려다가 자신들의 국립박물관에 옻칠, 나전칠기로 일본의 사계(四季),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벽화로 멋지게 그려 놓았지요.
재팬(JAPAN)의 뜻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옻칠 가구로 나오지요. 이것 역시 인터넷 말고, 종이 영어사전에서 찾아야지만 나옵니다. 이것 역시 질이 아주 안 좋으신 학자님들께선 일본(日本)을 일본어로는 닛뽄이라고 발음하는데, 닛뽄이 자팬(JAPAN)으로, 자팬이 다시 재팬(JAPAN)으로 불리게 됐다고 우기고 있지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나서
우리 역사가 기록된 책들을 모아 무려 장장 6개월에 걸쳐 태워 없애버렸으며, 당시 미국, 프랑스, 독일,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와 서적들이 엄청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는 이어져 내려왔지요. 아직도 남아 있는 역사에 근거하여 예전, 우리의 선조들이 기록한 하늘의 별자리를 측정하면,
그 위치는 이 한반도 안이 아니라, 모두 중국으로 나온다는 사실 알고 계시는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천문학자들과 기상학자들의 많은 연구 자료가 있으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직접 공부해 보시길…, 우리가 모르는 진실은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는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그레샴의 '그레샴 법칙'처럼,
종종 역사(歷史)는 진실(眞實)이라는 사실을 거짓이라는 거품으로 덮어버리곤 하지요. 하지만 그 진실을 거짓으로 덮는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진실은 언젠가는 거짓이라는 거품이 꺼지고 나면, 만천하에 그 진실을 명백히 스스로 드러내어 밝히게 마련이니까요. 진실과 기름은 언젠가는 수면(水面) 위로 떠오르게 마련이지요.
일본의 유명한 고고학자(考古學者)로 구석기 영웅이라 추앙받던, '후지무라 신이치'라 하는 자는, 우리나라의 유물을 몰래 도굴해가서는 일본 곳곳에 파묻어 두고서,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파내어 일본의 구석기(舊石器)시대 유물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발표를 했다가 고고학계에서 명망과 권위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유구한 세월 동안 찬란하게 꽃피웠던
우리의 문화, 지금은 강대국이라 불리는 그들을 능가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 전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 그 진실을 덮는 것, 이것이 작금의 강대국들이라 불리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프랑스 등, 그들과 이 나라의 친일파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영원히 감추고 싶은 비밀이자, 그들의 공통점이지요. 이런 말은 들은 적이 있는지요.
"역사여(歷史與) 지명지(地名之) 위치재(位置在) 생명야(生命也)!!" 이 말의 뜻은 역사여(歷史與) 역사는, 지명지(地名之), 지명과 위치재(位置在), 그 위치가 서로 같아야지만, 생명야(生命也),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만약 역사가 논하는 지명과 그 위치가 서로 맞지 않으면,
그 역사는 존재의 가치, 생명이 없다는 뜻으로, 그 역사는 누군가의 필요(必要)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虛構)의 역사(歷史), 조작(造作)된 역사'라는 뜻이지요. 인터넷이 발달하여,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는 지금에도 24시간 날조(捏造), 조작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데,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지 않던 당시에 그런 것쯤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요.
역사(歷史)는 절대, 진실만을 얘기하지 않지요. 역사(歷史)는 어떠한 나라를 막론하고, 어떠한 시대(時代)를 막론하고, 늘 권력을 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역사(歷史)가 지니고 있는 진실(眞實)이지요! 특히 이 땅의 친일파들은 불교, 천도교, 유교, 동학 등, 종교는 물론 문화, 예술,
교육, 경제, 정치 등, 사회 각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문화를 왜곡시켜, 늘 분란을 일으키는데 혈안이 되어있지요. 친일파, 그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의 불교(佛敎)를 와해시키기 위해서 아주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었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 때 불교의 승병으로 인하여,
당시에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에 대한 앙갚음, 그 분풀이를 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한반도가 일본에 합병이 되어 그들에게 치욕스러운 36년간의 지배를 받는 동안 많이 왜곡되긴 했지만, 해방되고 나서 이 땅에 미국이 들어온 이후, 그들로부터 각 요직에 등용이 되어 그들의 앞잡이가 된, 보수친일파들 그들은 정당한 실력으로
최고의 정상에 오르는 자를 제일 싫어하지요. 왜냐! 자신들에겐 그런 훌륭한 인품과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파벌을 형성하고, 실력을 지닌 자들의 성공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기필코 가로막으려 노력을 하고 있지요. 그것이 이 땅에서 훌륭한 인품과 실력을 지닌 자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이지요. 그리고 이 땅의 친일파,
그 후예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끊임없이 분란을 조장하여 자신들의 정체를 그 분란 속에 숨기려 들지요. 그래야 그 분란 속에 자신들의 본 모습을 숨길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실력이 없는 자를 마치 그자가 자신의 정당한 노력으로 성공(成功)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만든 후, 그를 앞세워 정직한 실력으로 성공한 자의 업적을 깎아내리고 늘 폄하(貶下)하는데 혈안(血眼)이 되어있지요. 그래야 자신들의 뜻대로 군중(국민)들을 좌지우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라는 말처럼, 우리의 과거 역사와 지금의 일본과 미국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와는 같은 민족이었던 일본…, 그들을 무조건 미워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경계심까지 늦추어선 안 될,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불편한 가까운 이웃이며, 우리에겐 먼 나라 미국, 우리의 자존심인 선조들이 물려주신 정신(精神)마저 그들에게 송두리째 내어주면서까지 그들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될, 우리나라 대한민국(大韓民國)에겐 너무나 불편한 먼 이웃입니다. -
제 5투(套) 병전계(倂戰計) - 상대를 위하는 척하다가 물리치는 계책
제 25계(計) 투량환주(偸梁換株) - 좋은 것을 훔쳐서 뿌리를 바꾼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여 함께 상대와 싸우며, 나중에는 나를 도와준 이도 내 휘하에 둔다.)
제 26계(計) 지상매괴(指桑罵槐) -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다. (상대가 알아듣고 기분 나쁠 정도로 상대의 비위를 건드린다.)
제 27계(計) 가치부전(假痴不癲) - 어리석은 척은 하되 미친 척은 하지 마라. (약은 체하여 상대로 하여금 나를 경계하게 하지 마라.)
제 28계(計)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 위에 오르면 사다리를 치운다. (상대를 유인하여 꼼짝 못 하게 한 다음,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
제 29계(計) 수상개화(樹上開花) - 나무 위에 꽃이 피게 한다. (내 수중에 아무것도 없어도 있는 척하여 상대를 제압한다.)
제 30계(計) 객반위주(客反爲主) - 손님으로 기회를 엿보다가 주인이 된다.(상대를 위하는 척하다가 내 것으로 만든다.)
제 6투(套) 패전계(敗戰計) - 상대와의 싸움에서 싸움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으로 바꾸는 계책
제 31계(計) 미인계(美人計) - 안 될 때는 아름다운 사람을 써서라도 뜻을 이루어라? (내가 직접 나설 수 없을 때나, 자신의 정체를 감추어야 할 때는 다른 이를 써서 해결한다.)
제 32계(計) 공성계(空城計) - 성을 비워라. (상대에게 일부러 나의 헛점을 내보여 상대를 오판하게 한 후, 목적을 이룬다.)
제 33계(計) 반간계(反間計) - 상대가 엿보는 것을 뒤집어 이용한다. (상대가 엿보는 것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 상대를 교란시킨 후, 내 목적을 달성한다.)
제 34계(計) 고육계(苦肉計) - 자기 몸을 괴롭힌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을 희생하여, 상대방이 오판(誤判)하게 한다.)
제 35계(計) 연환계(連環計) - 고리를 연결하라. (여러 군데로 상대의 정신을 분산시켜, 빠른 대응을 못 하게 한 후, 내 목적을 달성한다.)
제 36계(計) 주위상(走爲上) - 하다가 안 되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중요한 일이나 해결이 안 되는 일은 절대 다른 사람한테 시키지 말고, 본인이 직접 뛰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주위상(走爲上)의 바른 뜻은 어떤 일이 잘 풀릴 때는 부하나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시켜도 일이 잘 되지만, 일이 꼬여 해결이 잘되지 않을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뛰어야지만 그 일이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즉,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본인이 직접 상대와 부딪히면 상대의 표정이나, 말의 억양 등, 상대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자리에서 자신이 곧바로 대처할 수 있으나, 일이 꼬여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을 때에도 타인을 쓰게 되면, 그러한 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하기에 결국 일이 실패를 하고 만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잘 되고 있을 때는 타인을 써도 능히 일이 잘 풀리지만, 일이 꼬여 해결되지 않을 때는 부하직원이나, 타인을 믿으면 절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요점은 상대와의 싸움, 특히 전쟁(戰爭)에 있어서 절대 패(敗)하는 병법(兵法)이 아니며, 어떠한 경우에도 실패하지 마라, 만약 싸움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성공할 수 있는 계책(計策)과 빈틈없는 전술(戰術)과 전략(戰略)을 재정비한 다음, 다시 도전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을 끝내 쟁취하라는 병법(兵法)입니다.
그러나 삼십육계(三十六計)를 그리 사용하기보단, 혼탁한 세상에서 혹 나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혹은 생기기 전에 상대방의 교묘한 숨은 수(數)를 미리 알아내어 지혜(智慧)롭게 대처하는 방법으로 사용(使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삼십육계 중, 제 33계(計) 반간계(反間計)의 종류와 용간(用間) ※
반간계(反間計)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용간편(用間編)을 올려 드립니다. 삼십육계와 손자병법은 같은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나, 삼십육계와 손자병법은 서로 다른 병법(兵法)이며, 단공이라는 사람이 수천 년 전에 나온 병법들을 정리하여 36계(計)로 요약을 했으며, 이후 손무(孫武)가 이 36계(計)를 참고하여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지었다고 합니다.
※ 용간편(用間編) ※
* 손자왈(孫子曰), 범흥사십만(凡興師十萬)하야, 출정천리(出征千里)면 백성지비(百姓之費)와 공가지봉(公家之奉)이 일비천금(日費千金)하며, 내외소동(內外騷動)하야, 태어도로(怠於道路)하야 불득조사자(不得操事者)는 칠십만가(七十萬家)이니라.
[손자가 이렇게 말했다. 무릇 군대 10만을 일으켜 천 리의 먼 길을 출정하려면, 백성들이 대는 비용과 국가에서 대는 군사비가 하루에 천금을 소비하게 되며, 그로 인해 나라 안과 밖이 소란스럽고, 도로에서 군사가 왔다 갔다 하여,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는 자가 70만 호가 된다.]
- 상수수년(相守數年)에 이쟁일일지승(以爭一日之勝)이니, 이애작록백금(而愛爵祿百金)하야 부지적지정자(不知敵之情者)는 불인지지야(不仁之至也)니, 비인지장야(非人之將也)요 비승지주야(非勝之主也)이니라.
[서로 지키기를 여러 해 동안, 서로 하루의 승리를 다투는데, 벼슬과 봉록과 백금을 아끼어 적의 정세를 모른다 하는 것은 장수를 돕는 것이 아니요, 군주를 돕는 것도 아니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도 못한다.]
- 고(故)로 명군현장(明君賢將)은 소이동이승인(所以動而勝人)하야, 성공출어중자(成功出於衆者)는 선지야(先知也)라. 선지자(先知也)는 불가취어귀신(不可取於鬼神)하고, 불가상어사(不可象於事)하고, 불가험어도(不可驗於度)하고 필취어인(必取於人)하야 지적지정자야(知敵之情者也)이니라.
[고로 명석한 군주와 현명한 장수가 전투에 있어,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공을 세우는 까닭은 적의 실상을 먼저 알기 때문이다. 적의 실정을 먼저 안다는 것은 귀신에게 물어서 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칙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적국의 사람에게서 취하여야지만 적의 실정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다.]
- 고(故)로 용간(用間)에 유오(有五)하니, 유향간(有鄕間)하고 유내간(有內間)하고 유반간(有反間)하고 유사간(有死間)하고 유생간(有生間)이니라. 오간구기(五間俱起) 하되 막지기도(莫知其道)하니 인군지보야(人君之寶也)라.
[간첩을 사용함에 있어 다섯 가지가 있으니, 향간(鄕間)이 있고, 내간(內間)이 있고, 반간(反間)이 있고, 사간(死間)이 있고, 생간(生間)이 있다. 이 다섯 가지 간첩은 함께 일으키되 적이 그 방법을 알지 못하니, 이를 신묘한 방법이라 일컬으며, 이것은 군주의 보배인 것이다.]
* 향간자(鄕間者)는 인기향인(因其鄕人)하야 이용지지(而用之知)하고, (향간은 적의 고을 사람을 매수하여 쓰는 것이고,)
* 내간자(內間者)는 인기관인(因其官人)하야 이용지지(而用之知)하고, (내간은 적의 관리를 매수하여 쓰는 것이고,)
* 반간자(反間者)는 인기적간(因其敵間)하야 이용지지(而用之知)하고, )반간은 적의 간첩을 매수하여 역으로 쓰는 것이고,)
* 사간자(死間者)는 위광사어외(爲誑事於外)하야 영오간지자(令吾間知之)하여, 이전어적지(而傳於敵也)하고, (사간은 우리 측의 거짓 정보를 진짜인 것처럼 속여, 아군의 간첩에게 적에게 거짓을 사실처럼 전하게 하는 것이고,)
* 생간자(生間者)는 반보야(反報也)이니라. (생간은, 적지에서 간자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하는 것이다.)
- 고(故)로 삼군지사(三軍之事)에 교막친어간(交莫親於間)하고, 상막후어간(賞莫厚於間)하고, 사막밀어간(事寞密於間)이니라. 비성지(非聖智)이면 불능용간(不能用間)하고, 비인의(非仁義)이면 불능사간(不能使間)하고,
[고로 간자를 부릴 때는 마치 군사를 부리듯 간자를 중히 여겨야 하며, 중히 여겨야 할 그 세 가지는, 간자와는 아주 친밀함이 있어야 하고, 성공에 대한 상을 아주 후하게 줘야 하며, 간자가 자신이 간자인지 모르도록 절대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 군주에게 뛰어난 지혜가 없으면 능히 간자를 부리지 못하고, 어질고 의롭지 않으면 능히 간자를 부리지 못하고,]
- 비징묘(非徵妙)이면 불능득간지보(不能得間之寶)이니 징재징재(徵哉徵哉)이며 무소불능간야(無所不能間也)이고, 간사미발이선문(間事未發而先聞)이면, 간자여소고자(間者與所告者)는 개사(皆死)이니라.
[간자를 미묘하게 부리지 못하면 능히 간자의 실적을 얻지 못한다. 간자의 쓰임이란, 참으로 미묘하고도 미묘하며, 무릇 간자가 쓰여지지 않는 곳이 없다. 만약 간자가 그 일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그 일에 대한 정보가 타인으로부터 먼저 들리면, 그 일을 먼저 알린 사람과 간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 범군지소욕격(凡軍之所慾擊)과 성지소욕공(城之所慾功)과 인지소욕살(人之所慾殺)은 필선지기수장(必先知其守將)과 좌우(左右) 알자(謁者)와 문자(門者)와 사인지성명(舍人之姓名)하되 영오간필색지지(令吾間必索知之)이니라.
(무릇 군대가 공격하고자 하는 곳과 성의 공략하고자 하는 곳과 사람을 죽이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곳을 지키는 장수와 좌우에 있는 측근과 당번과 문지기, 그리고 사용인들의 성명을 아군의 간자로 하여금 찾아내게 하여, 필히 먼저 알아내야 한다.)
- 필색적인간(必索敵人間)으로 래간아자(來間我者)하야, 인이리지(因而利之)하야 도이사지(導而舍之)하니, 고(故)로 반간(反間)을 가득이사야(可得而舍也)이니라.
[적의 간자로 우리나라에 와서 아군의 정보를 빼가는 자를 반드시 찾아내어 그를 역으로 많은 이익으로 매수를 하여, 우리 측의 간자로 만들어 놓으면, 후에 그 간자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반간으로 부릴 수 있다.]
- 인시이지지(因是而知之)니 고(故)로 향간(鄕間)과 내간(內間)을 가득이사야(可得而舍也)이니라. 인시이지지(因是而知之)이니 고(故)로 사간(死間)이 위광사(爲誑事)하야 가사고적(可使告敵)이니라. 인시이지지(因是而知之)이니 고(故)로 생간(生間)을 가사여기(可使如期)이니라.
[이로 인하여 적의 실정을 알 수 있으므로, 향간과 내간도 얻어 부릴 수 있다. 또 이로 인하여 적의 실정을 상세히 알 수 있으므로, 사간이 아군의 일을 속여서 적에게 알리게 할 수도 있다. 또 이로 인하여 적의 실정을 알게 되므로, 생간을 기약한 대로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 차오간지사(此五間之事)는 주필지지(主必知之)이니 지지(知之)는 필재어반간(必在於反間)이니 고(故)로 반간(反間)을 불가불후야(不可不厚也)이니라.
[이 다섯 가지 간첩에 대한 일은 반드시 군주(여기서 군주는 현대에선 나라의 대통령은 물론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을 뜻함)가 알아야 한다. 적의 실정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반간에게 있다. 그러므로 반간은 후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석(昔)에 은지흥야(殷之興也)에 이격재하(伊擊在夏)하고 주지흥야(周之興也)에 여아재은(呂牙在殷)이니라. 고(故)로 유명군현장(惟明君賢將)이라야 능이상지(能以上智)로 위간자(爲間者)하야 필성대공(必成大功)이니 차(此)는 병지요(兵之要)이며, 삼군지소특이동야(三軍之所特而動也)이니라.
[옛날 은나라가 일어날 때 이윤은 하나라에 있었고, 주나라가 일어날 때 강태공(姜太公) - 여아(呂牙)는 은나라에 있었다. 그러므로 오직 정세에 밝은 군주와 현명한 장수만이 뛰어난 지혜로써 상대방의 중요 인물을 간자로 삼아 반드시 큰 공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용병의 요결이요. 삼군은 이를 믿고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은나라가 일어난 것은 하나라의 이윤을 간자로 쓴 것이며, 주나라가 일어난 것은 은나라의 강태공(姜太公)을 간자로 이용한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었다.]
이처럼 모든 적은 항상 내부에 있으며, 실력이 뛰어나서 가장 신뢰하는 자가 간자(間者)인 경우가 많았음을 역사(歷史)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합니다.
현 시대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가장 치명타를 주는 사람과 나라는 늘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자신이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며, 우방이라 믿고 있는 나라입니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드러나 있는 적은
상대하기 쉬우나, 자신의 진면목을 친밀감으로 위장하여 어둠 속에 숨기고 있는 적은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눈을 틔우게 되면, 비로소 그때 지금껏 자신의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던 적들이 적나라하게 보이게 됩니다.
자신에게 상처와 치명상을 입히는 적은 자신과 주위로부터 믿음과 명망과 신뢰를 쌓은 사람이 늘 그 믿음에 대해 배반을 하는 것이며, 그동안 자신이 그를 믿은 만큼의 상처와 믿은 만큼의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를 신뢰하여 그로부터 배반을 당하여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에게 배반을 당한 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 그를 굳게 믿은 자신의 탓, 내 탓입니다. 부디 자신의 지혜를 틔우셔서, 소중한 자신을 스스로 지키시길 바랍니다.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라는 말처럼, 우리의 과거 역사와 지금의 일본과 미국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와는 같은 민족이었던 일본…, 그들을 무조건 미워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경계심까지 늦추어선 안 될,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불편한 가까운 이웃이며,
우리에겐 먼 나라 미국(美國), 우리 민족의 자존심, 선조들이 물려주신 우리의 정신(精神)마저 그들에게 송두리째 내어주면서까지 그들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될,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겐 너무나 불편한 먼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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