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千字文)을 아직도 많은 이들은, 6세기 경 중국 양북조梁北朝 시절에 중국의 양무제(梁武帝, 서기 502~549)가 왕희지(王羲之)의 필체를 매우 좋아하여 주흥사(朱興寫)에게 명(命)을 내려, 왕희지 글씨체로 1000자로 이루어진 글을 짓게 하여,
주흥사(周興嗣)라는 사람이 천자(千字)로 이루어진 글귀로 천자문을 쓴 것으로 알고 있으며, 주흥사가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쓰느라 고민을 하여, 머리가 허옇게 변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 하기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자문은 그보다 앞선, 서기 285년에 백제(百濟)의 오경박사(五經博士)였던 왕인(王仁)이 이미 천자문(千字文)을 지금의 일본(日本), 당시에는 왜(倭)에 가지고 가서 전(傳)하여 가르쳤었고,
오경(五經)은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뜻하며, 이 오경(五經)에 뛰어난 사람을 오경박사(五經博士)라 칭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자문(千字文)은 그보다 훨씬 앞선 후한(後漢) 말 시절, 조조(曹操[AD 216~AD 220]가 위(魏)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스스로 위나라의 왕(王)에 봉하고 위왕(魏王)이 되었는데,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아비인 조조(曹操)의 제위를 찬탈하여 다시 위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던 때에, 당시 재상(宰相)이었던 종요(鍾繇)라는 사람이 조비(曹丕)에게 계속 충언을 간하자,
조비(曹丕)가 그를 탄핵하여 없애기 위해 "하루 만에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구(二白五十句)의 글을 지어 바치되, 만약 하나라도 중복되는 것이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엄명을 내려,
종요(鍾繇)가 하루 만에 천자문을 지어 조비(曹丕)에게 바쳤으며, 하룻밤 만에 천자문을 짓느라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해서 백수문(白首文)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천자문(千字文)은 종요(鍾繇)가
당시 중국에서 전해오며 사용하고 있는 문자(文字) 중에서 천지와 우주의 이치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도와 법칙을 비롯하여 나라에 대한 충의와 부모에 대한 효성과 사회생활에서의 의리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구(二白五十句)로 이루어진 천자문(千字文)을 지은 것이며, 당시에는 천자문(千字文)이 아니라, 천자문(天字文)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인 언재호야(焉哉乎也)는 우리가 천자문의 마지막 구절로, 별다른 뜻 없이 단순히 앞 구절들의 어조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흔히들 그렇게 알고 있으나, 언재호야(焉哉乎也)는 천자문(天字文)에서 단순히
그런 어조사 역할을 하는 구절이 아니라, 사언체(四言體) 이백오십구(二白五十句)의 천자(千字)로 이루어진, 천자문(天字文)에 담긴 뜻을 바르게 이어 네 뜻을 바르게 이루고, 천자문에 담긴 그 뜻을 바르게 잇고 이으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歷史)는 지금도 기득권을 쥔 자들의 이해타산(利害打算)과 사리사욕에 의해 꾸준히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번 왜곡된 역사(歷史)를 바로잡기란 매우 어려우며, 역사는 시대(時代)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이란 권력을 쥔,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계속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과 서양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제멋대로 왜곡시켜 놓은 우리의 역사를,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일말의 의혹도 없이 검증도 없이 검증할 생각도 없이,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이 왜곡해 놓은 우리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한사군(漢四郡)과 신라 고구려 백제, 조선의 역사를 지금의 한반도 안으로 축소 시켜 놓은 것과
곰이 동굴에서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어 환웅(桓雄)과 결혼을 하여 단군(檀君)을 낳았다고 하는 단군신화(檀君神話)입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신화(檀君神話)가 아니라, 환인조선(桓因朝鮮), 배달조선(倍達朝鮮), 이어 내려온 우리의 역사입니다.
한사군(漢四郡, 기원전 108년~314년) 또는 한군현(漢郡縣)은 전한(前漢)이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위만조선 내에 설치하였다고 하는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과 예맥(濊貊) 지방에 설치하였다고 하는 현도군을 포함하여 한사군(漢四郡)이라 합니다.
- 역사(歷史)의 오류를 가장 범하기 쉬운 최전선(最前線)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다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번역(飜譯)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번역(飜譯)은 또 다른 창작물로 여길 만큼 아주 힘이 든다고 하며, 번역(飜譯)하는 이의 노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번역(飜譯)과 의역(意譯), 음역(音譯)이란 무엇이며 문자 속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을까요?!
번역(飜譯)을 사전에서는 “어떤 언어로 된 글을 전혀 다른 언어의 글로 바꿈.”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飜譯)이란 문자의 뒤칠 번(飜), 거스를 번(飜), 넘칠 번(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분별할 변(釆)과 밭 전(田)으로 알고 있는 완전할 전(田), 날 비(飛)로 알고 있는 이끌 비(飛)로 이루어져,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이끈다는 뜻이 들어있으며,
번역(飜譯)의 살필 역(譯), 분별할 역(譯), 헤아릴 역(譯), 통역(通譯)할 역(譯)이라는 뜻을 지닌 문자는 말씀 언(言)과 가릴 역(睪), 엿볼 역(睪)이란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문자 속에는 이룬 것을 엿보고 살핀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하여, 번역(飜譯)이란 문자에는 “어떤 이가 지은 글의 뜻을 거듭 살피고 헤아려서 완벽하게 분별하고 통역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그의 뜻이나 생각을 바꾸도록 하고 생각을 바꾸게끔 이끈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해, 번역(飜譯)이란, 문자 속에는 지금 번역(飜譯)하는 자(者), 그가 의도를 지니고 하던, 하지 않던 그의 글은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뜻이나 생각을 완전히 바꾸도록 거듭 이끈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飜譯)을 하는 자(者), 그자가 자기 나라의 언어와 바른 역사와 문화는 물론, 지금 어떤 언어로 번역을 하고자 하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심각한 정보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또 오류의 정보를 번역하고 전달하게 되어, 많은 이들을 정보의 오류에 빠지게 할 수 있기에, 번역(飜譯)하는 자는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의역(意譯)을 사전에서는 “외국어로 된 글이나 말을 구절의 본뜻에 얽매이지 않고, 글 전체가 담고 있는 뜻을 그대로 살려 번역함.”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의역(意譯)의 뜻 의(意), 의지 의(意), 생각 의(意), 마음 의(意)에는
뜻을 거듭 세웠다는 뜻이 들어있어 의역(意譯)이란, 문자 속에는 어떤 책이나 문화를 번역(飜譯)하는 자(者)가 책이나 글을 쓴 원작자(原作者)의 뜻을 완벽하게 전달하기로 마음을 거듭 세웠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즉 의역(意譯)에는 글을 쓴 원작자(原作者)의 뜻은 물론, 지금 번역(飜譯)을 하고 있는 이의 뜻도 함께 들어가게 되므로, 제 나라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은 물론, 번역하고자 하는 그 나라의 문화나 역사와
그 나라의 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그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오류 정보를 전달하게 되어 심각한 정보의 오판(誤板)에 빠질 수 있게도 하는 것입니다. 즉 의역(意譯)을 한 자(者), 그의 번역물을 읽는 사람을 중대한 정보의 오판(誤板)에 빠질 수 있게 하기에, 그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할 것입니다.
- 음역(音譯)을 사전에서는 “한자의 음으로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일”이라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음역(音譯)은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지 않고 소리 나는 음(音)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즉,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지 않고, 음역(音譯)을 한 이유는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잘못하게 되면 후대(後代)에 전하고자 하는 본뜻이 왜곡되어 전해지므로, 본뜻이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음역(音譯)을 해 놓은 것이며, 그 임무는 많은 공부와 이치를 깨달은 인물에게 그 임무를 맡겨 놓은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문화의 중요한 최선봉장(最先鋒將)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는 이들이 제 나라의 역사와 제 나라의 글과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면, 잘못된 번역(飜譯)과 의역(意譯)으로 인한, 오역(誤譯)을 범하기 쉬우며,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는 이들이 제 나라의 역사와 글과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제대로 모른 채, 막연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여, 자신의 나라로 옮기고 있다면, 그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일수록,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할 때에는 더욱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제 나라의 문화를 다른 나라의 글로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하여 옮기던,
아니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신의 나라, 글로 번역, 의역하여 옮기던, 지금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 통역(通譯)을 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도 더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 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 문화(文化)라는 문자 속에는 머리 즉, 근본을 다스려 바꾼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즉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는 이들의 행위는 그 글이나 책을 읽는 이의 생각이나 근본을 바꾸게 하는 최선봉장(最先鋒將)에 서 있다는 뜻으로,
어떤 번역물(飜譯物)이나 의역물(意譯物)을 읽는 이들을 다른 나라의 문화를 동경(憧憬)하게 하고 그들의 생각과 근본을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의 글로 된 문화, 즉 소설이나, 경전을 번역하여,
자기 나라에 그 나라 문화를 알리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 나라의 사람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자기가 태어난 조국의 문화를 외국(外國)에 다른 나라에 제대로 올바르게 널리 알리는 것도 더욱 중요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처럼,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는 자(者)가 자신의 조국에 대한 문화(文化)와 역사(歷史)에 대해 얼마나 올바르게 많이 알고 있으며, 얼마나 바르게 이해를 하고 있는가?
그자가 자기가 태어난 조국의 역사에 대한 가치관(價値觀)과 또 이치는 얼마나 깨우쳐 있는가 하는 수준에 따라, 번역이나 의역의 수준은 천차만별(千差萬別)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며,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문학인(文學人)들이 아직 노벨상을 못받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나타내며, 우리나라 문학이 지니는 수준이 그 나라에 비하여 수준이 떨어져서 혹,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시인(詩人)이나 소설가(小說家)가 다른 나라 문학인(文學人)들과 비교해 그 수준이 떨어져서 노벨상 문학수상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소리글자이자 뜻글자인 우리의 글, 한글을
그 나라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하기 어려운 점이 우리나라 문학인 중에서 아직 노벨상 문학상 분야에서 수상자가 없고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번역(飜譯)과 의역(意譯)에 뛰어나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 조치훈(趙芝薰) 선생님의 시(詩), "승무(僧舞)"를 일본이나 미국, 독일이나 프랑스 등, 그 나라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飜譯)이나, 의역(意譯)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바가 아직 없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문화(文化), 시(詩)나 소설(小說)을 다른 나라의 글로 번역을 하는 이들의 번역 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한글은 세계 최고의 언어(言語)이자, 기호학(記號學)이라고 프랑스의 언어 학자 소르쉬가 감탄을 했듯이
우리의 글, 한글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特有)의 표현력(表現力)을 제아무리 일본이나 미국, 독일이나 프랑스 등, 그 나라의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하려 해도 표현력의 한계에 부딪혀 제대로 옮길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우리나라의 말과 글이 지니는 우리 한글만의 고유하고 독특하며 아름다운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글, 한글, 뜻과 소리로 이루어진 우리의 글 한글은 이 세상, 어느 나라의 글보다 위대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승무(僧舞) - 조치훈(趙芝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어떻습니까? 승무(僧舞)란 시(詩)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 이 표현을 일어(日語)나 영어(英語),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제대로 번역, 의역을 할 수 있겠는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한 번 번역, 혹은 의역을 해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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