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매일같이 무엇에 쫓기는 듯 그런 바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빠져,
소위 인생을 사색思索한다는 사람치고,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1장에 나오는 "지자부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라는, 구절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노자老子의 대표사상代表思想인, 상선약수上善藥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사상 중, 그 하나인 "지자부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듯,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 도는 이미 도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이라 말하는 순간, 그 이름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 라고 하는데, 정말 과연 그런 뜻일까요?
노자老子가 과연, 자신의 깨우침을 후세가 알아듣지도 못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자신만이 알고자 어렵고 난해難解하게 그런 뜬구름 잡는 듯 하는 말로 표현을 해놨을까요?
우리가 지금은 중국 글이라 알고 있으며, 현재는 한문漢文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우리의 글자, 뜻글자인 문자文字의 해석은 십육현문이란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16현문十六玄門" 이라 하여, 16가지의 방법으로 해석을 한다고 합니다.
이 16현문十六玄門에 완전히 통달을 하게 되면 한 소식하게 된다고 하며, 16현문에 모두 통달하시고 저보다 해석解釋 능력이 더 뛰어나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여기선 제가 해석하여 제가 알고 있는 만큼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지자부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을 해석하자면, "언자부지言者不知, 지자부언知子不言, 깊이 아는 자는 가벼이 말을 하지 않으며, 가벼이 말을 하는 자는 깊이 알지를 못한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道를 도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기에 도道라고 하는 것이며,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고 옳기에 옳다고 하는 것이다." 라는 해석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기에서의 "도道" 는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理致" 즉, 진리眞理를 말하며, 우리가 살면서 늘 이치를 거듭 깨닫는 것, 그 이치를 깨우치는 것을 생각生覺이라고 하며, 그 생각生覺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만 깨닫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우주 삼라만상 모든 "이치理致" 를 함축하여, 단 한 글자로 표현을 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동물인 "소" 를 뜻하는 문자로 알고 있는, "소 우牛" 라고 하는 단 하나의 문자로 귀결이 됩니다.
이 소 우牛라는 문자는 단순히 동물의 소를 뜻하는 문자가 아니라, 깨어날 소蘇 우牛, 이치理治 우牛, 사리事理 우牛, 진리眞理 우牛"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무엇 때문에 저 "소 우牛"라고 하는 문자를 이치理致 우牛, 사리事理 우牛, 진리眞理 우牛라고 했으며, 왜! 저 "소 우牛"라 하는 문자가 이치와 사리에 맞는 문자라고 하셨을까요?!
깨어날 소蘇 우牛는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이치理治이며, 사리事理이며, 진리眞理다." 라는 뜻이지요. 깨어날 소蘇는 소리蘇理 소蘇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깨어날 소蘇, 깨우칠 소蘇라는 문자 속에는 이치理致로 사리를 깨우쳐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뜻으로 "매사每事를 이치로 관찰하여, 자신의 어리석은 본질을 깨우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가 내는 소리蘇理에는 그 소리만이 지니고 있는 이치가 들어 있으며, 각 소리에는 각 소리마다 만물들을 이치로 깨어나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치이며, 그것이 진리라는 뜻입니다.
즉, 동물들의 소리엔 그 소리만의 이치가 담겨 있어, 그 동물들을 이치로 깨어나게 하며, 각종 식물들이 지닌 소리엔 그 식물들을 이치로 깨어나게 하며, 사람들의 말소리 또한 사람들을 이치로 깨어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뜻입니다.
소 우牛라는 이치 우牛의 문자를 파자하면, '모두 다' 라는 뜻과 '움직인다, 변變한다' 라는 뜻의 움직일 별과 '거듭 이二, 다를 이二'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여, 소 우牛에는 "모든 것은 거듭 움직이며, 거듭 다르게 변한다.' 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이 우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 그것이 세균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의 마음이든, 물이든, 바람이든, 행성이든, 항성이든, 혜성이든, 달은 지구를 돌며 다르게 변하고, 지구는 태양을 돌며 다르게 변하고,
태양은 북극성을 돌며 다르게 변하고,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자라면서 다르게 변하고, 태아로 태어나서 지금껏 다르게 변하고, 나의 사고思考도 매일 다르게 변하며, 자연도 거듭 다르게 변한다.
이처럼, 그 모든 것들이 매일같이 변하며 다르게 변變한다는 사실, 그것이 변變하지 않는다. '이 세상,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늘 움직이며, 거듭 다르게 변한다. 그것이 이치理治고, 사리事理이며, 그것이 진리眞理다!' 라고,
우리 선조들께서는 우리가 그동안 동물인 "소"로 알고 있던, "소 우牛, 이치 우牛, 사리 우牛, 진리 우牛"라고 하는, 단 하나의 문자 속에, 그 모든 뜻을 담아 놓으셨던 것입니다.
"세상世上의 모든 것은 변變한다, 그 모든 것이 늘 다르게 변한다는 사실, 그것이 변變하지 않는다." 는 그런 멋진 뜻을 담은 "이치 우牛", "사리事理 우牛"는 "도道"와 같으며, "도道"를 "도道"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언제 어느 때든, 수백 억 년 전의 과거過去든, 현재現在든, 수천 억 년 후의 미래未來든 항상 변치 않고, 늘 일정하기 때문에 "도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자老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理治, 이것을 도道라 한다! 라고, 다시 한 번 역설했던 것입니다.
- 세상의 모든 것은 이치理致로 논論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그 바른 이치理致를 일러, 길吉 도道라 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길은 우리가 걸어 다니는 길을 뜻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 바른 이치를 일러 상서祥瑞롭다고 하여 상서로울 길吉이라 하였던 것이며,
그 상서로운 것을 좋다고 하여 좋은 길吉이라 하였던 것이며, 그 좋은 것이 길하다 해서 길할 길吉이라 하였던 것이며, 그 길한 것을 이루라고 하여, 이룰 길吉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길吉 도道이며, 도道는 길吉,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자신이 이룬 뜻을 바르게 펼치는 것을 도道라 한다!!
즉, '자신이 가는 길, 배우고자 하는 것이 상서롭고 좋은 것이 아니면, 배우려 하지 말고,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며, 어리석은 자신을 바르게 깨우치려면 나쁘고 해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따라하여 그것을 익힐 것이 아니라,
상서祥瑞롭고 좋은 것을 보고 따라하여, 익숙하게 배워 자신의 어리석음을 거듭 깨우치라.' 고 하였던 것이며, '도道는, 무슨 신통력을 얻어 비구름 바람을 부르는 기인 이적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서롭고 좋은 것을 보고 따라하며 배우고, 깨우치고 터득하여 자신의 뜻을 올바르게 이루고, 자신이 이룬 것을 거듭 바르게 완성하고, 자신이 이룬 것을 거듭 바르게 펼치는 것을 '도道'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명名은 이름 명名, 움직일 명名, 이를 명名, 옳을 명名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 부르는 이름은 이름이 지니는 그 뜻대로 그렇게 이르라고 불러주는 것입니다. 이름 명名은 옳을 의義와 그 뜻이 같으며, 옳을 의義는 옳을 의義, 바를 의義, 좋을 의義, 선량할 의義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옳을 의義, 바를 의義는 우리가 동물의 양으로 알고 있는, "양 양羊", "기본基本 양羊", 좋을 양"과, "나 아我"로 파자 되며, "기본 양羊"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본基本을 바탕으로 거듭 자신의 뜻을 세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동물을 뜻하는 '양 양羊'은, '어질 량良 양羊'으로,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 가지 기본基本 바탕인 정精, 기氣, 신身…, 즉, '자신의 올바른 정신精神,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재능才能, 자신의 건강한 육체肉體,
그 세 가지 기본은 어질고 바르게 이루고, 기본을 어질고 바르게 이루니 좋다는 뜻의 좋을 양이며, 어질고 바르게 이룬, 자신의 그 세 가지 기본基本, 정精, 기氣, 신身을 늘, 어질고 바르게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문자의 량良은 어질 량良, 좋을 량良, 뛰어날 량良, 아름다울 량良, 길할 량良, 아름다울 량良, 편안할 량良, 훌륭할 량良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문자의 어질 량良은 우리가 '점 주丶' 로 알고 있는 무언가 있다는 뜻의 '있을 주丶' 와
그칠 간艮, 머물 간艮, 견고할 간艮, 어긋날 간艮으로 이루어져, '어질 량良'이라는 문자 속에는 '어리석은 자신을 세상의 이치로서 바르게 깨달아 자신의 마음을 어질게 바꾸어 존재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간艮이라는 문자는 늘 자신의 마음을 어질게 유지하려 노력하고, 늘 어진 곳에 머물라는 뜻의 머물 간艮이며, 어질게 이룬 자신의 세 가지 기본을 견고하게 지키라는 뜻의 견고할 간艮이며, 자신의 몸을 이루는 기본 바탕인 정精, 기氣, 신身, 그 세 가지 기본基本은
어긋나게 이루어서는 안 된다는 뜻의 어긋날 간艮이며, 어질고 훌륭하게 자신의 기본을 이루고 나면, 그만 그치라는 뜻의 그칠 간艮이며, 만약 그치지 않고 더 지나치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애써 이룬 것이 모두 어긋나게 된다는 뜻의 어긋날 간艮인 것입니다.
또한 문자의 량良은 자신의 몸의 기본을 이루는, 그 세 가지 기본, 정精, 기氣, 신身을 어질게 이루니 좋다는 뜻의 좋을 량良이며, 그렇게 이룬 기본은 아름답다는 뜻의 아름다운 량良이며,
그렇게 아름답게 이루니 좋고 길하다는 뜻의 길할 량良이며, 그것은 자신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편안할 량良이며, 어질고 바르게 이룬 자신의 기본은 훌륭하다는 뜻의 훌륭할 량良인 것입니다.
하여, '옳을 의義' 라는 문자 속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기본을 펼치는 것은 옳은 것이다. 자신의 기본은 어질게 이루는 것이 옳은 것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누구나 자신이 지닌 정精, 기氣, 신身, 이 세 가지 기본基本을 펼치는 것은 옳은 것이며, 그 세 가지 기본基本은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사고방식인 정신, 자신만의 튼튼하고 건강한 육체,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기술과 능력을 일컬으며, 옳을 의義란, 오직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이 세 가지의 기본을 밖으로 널리 펼쳐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옳을 의義란,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아무리 옳아도, 그 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자신의 옳은 행동도 이러할 진대, 지금 자신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하여, 자신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어찌 되겠는지요.
"이름 명名, 옳을 명名, 움직일 명名"은 저녁 석夕으로 알고 있는 움직일 석夕, 조금 석夕과 펼칠 구口로 이루어져, "조금씩 움직여 펼친다." 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누구나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자신의 재능과 기술은 매일 같이 갈고 닦아 늘, 자신의 재능과 인성을 조금씩 향상시켜 자신의 재능을 완벽하게 이루고, 자신이 지닌 재능을 펼쳐 자신의 뜻을 이루므로, 그것을 일러 이름 명名이라 하며, 그렇기에 그것을 옳다고 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늘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을 조금씩 향상시켜 펼치기에 자라고 진화進化하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서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열매를 맺거나 자신의 자식을 자신보다 더 훌륭하게 기르는 것입니다.
노자老子는 '자신의 능력을 늘 조금씩 향상시켜 자신의 뜻을 바르게 이루려는 움직임', "이것을 명名이라 하며, 이것을 옳다! 라고 한다." 라고, 다시 한 번 역설했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미생물이든 ,지금 각자 자신이 지닌 그 기본을 끝없이 노력하여 거듭 완성시키는 것이며, 자신의 기본을 거듭 펼쳐, 지금의 자신보다 더욱 진화한 후손이나 열매를 맺느냐!
아니면, 퇴화에 퇴화를 거듭하여 도태가 되느냐! 하는 단지但只 그 차이일 뿐…, "각자 자신이 지닌, 자신만의 기본을 펼치는 것은 누구나 지금 옳다." 라는 뜻이며, 이 세상에서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늘 항상 옳은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와 진리라 하는 것은 늘 변치 않고, 옳기에 이치理致와 진리眞理라고 하는 것이지, 얄팍한 이익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인간의 마음처럼, 어떤 때는 맞고, 어떤 때는 맞지 아니하는 것은 이치理致와 진리眞理가 아닌 것입니다.
이름 명名, 이를 명名, 옳을 명名이란 뜻을 지니는 자신의 기본基本이 담겨 있는 이름, '예쁜 아이, 이치로서 자신을 다스려 이치로서 자신의 뜻을 바르고 고르게 이루어 자신의 뜻을 널리 밝힌다.' 는 뜻을 지닌 '연아姸兒', 그 이름이 지니는 뜻, 그대로
늘 자신의 뜻과 행동을 바르게 실천하여 실력이면 실력, 인성이면 인성, 어느 면에서 하나 뒤쳐진 부분 없이,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고르게 완성하여 자신의 뜻을 바르게 펼치는 그런 김연아라는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비 오는 어느 날의 행복한 오후입니다.
- 우리가 흔히 독이 된다고 하거나, 어떤 사람의 마음이 독하다고 표현할 때의 독은 문자로는 독毒이라 표현합니다. 독하다는 표현은 강하고, 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닥친 어떠한 역경을 꿋꿋이 이겨내는 사람을 보고, 흔히 독하다고 표현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어떤 역경을 꿋꿋하게 극복해내려면, 매서운 독기毒氣를 품어야만 가능하기도 합니다. 독毒이란,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 또는 그런 독성을 가진 약제를 뜻합니다.
독毒에는 해칠 독毒, 죽일 독毒, 근심할 독毒, 괴로워할 독毒, 괴롭힐 독毒, 미워할 독毒, 원망할 독毒, 한탄할 독毒, 개탄할 독毒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지만, 다스릴 독毒, 부릴 독, 병 고칠 독毒, 기를 독毒, 키울 독毒이라는 상반된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독毒이란, 사람을 괴롭게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병病에 들게도 하지만, 사람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병病을 다스려 낫게도 하며, 키우고 기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독毒은 왜?! 이런 상반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독毒은 주장할 주主라는 문자와 끝 없을 모母, 천지 근본 모라는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장할 주主는 '있을 주丶와 '기본 왕王', '세울 왕王' 으로 구성이 되어, 주장할 주主에는 '자신의 정, 기, 신, 그 세 가지 기본基本을 거듭 이루고 세우게 되면,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자신이 지닌, 그 세 가지의 기본基本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主張을 펼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기본, 자신의 주장은 자신을 다스리게도 하고 거듭나게도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그만 멈추어야 함에도,
끝없이 계속 주장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이 지닌 그 세 가지 기본基本은 자신의 몸과 정신을 다스려 자신을 거듭나게 하는 좋은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害치고, 죽게 하는 독毒으로 작용을 하게 된다.' 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자신의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자신이 운전하는 자동차와도 같으며, 자신이 존재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동차를 운전하여 달리다 분명, 어떤 순간이 오면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멈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 하지를 못하고 계속 지나쳐 달리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편리를 추구하는 자동차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목숨을 해치는 자동차로 작용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음식을 그만 먹어야 함에도 지나치게 먹게 되면,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 그때부터는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해치는 독毒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존재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들어가는 곳을 일러, 입이라 표현합니다. 그 입을 문자로는, 들어간다는 뜻의 들 입入 을 써서 입入 구口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로 드러내어 펼치는 곳이라 하여, 펼칠 구口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입을 일러, 또 다른 표현으로 '자신의 입은 자신의 모든 재앙을 부르는 문' 이라는 뜻의 '구화지문口禍之門' 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은 칼로리가 몇 칼로리냐!, 성분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을 따져서 분석하고 난 다음,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각 장부에서 지금 필요로 하는 맛, 그 맛을 찾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즉, 신 맛은 간과 담에 이로우며, 짠 맛은 신장과 방광에 이로우며, 매운 맛은 폐와 대장에 이로우며, 단 맛은 비장과 위장에 이롭습니다. 지금 무슨 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은 하루 몇 칼로리를 섭취해야만 하며, 무슨 성분을 먹어야만 사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한다면,
그런 성분 분석기와 하루 몇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던, 오래 전 그 시절의 인간은 지금껏 어찌 살아 왔겠는지요?! 그런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평소 우리가 무엇을 먹으며 맛있다고 표현할 때의, 그 맛은 우리 몸의 장부가 어떤 맛을 필요로 할 땐, 그 음식의 맛을 맛있다고 느끼지만, 우리 몸의 어떤 장부에서 그 맛이 필요 없을 땐, 평소엔 맛있다고 느끼던 음식도 맛이 없다고 느끼게 하여, 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맛을 문자로는 맛 미味라 합니다. 맛 미味는 입 구口, 펼칠 구口와 미래 미未로 이루어져, 훗날 다가오는 자신의 미래未來는 현재 지금 자신이 먹은 음식과, 지금 자신의 입으로 펼친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우리 각자, 자신의 미래는 전지전능하다는 어느 누가 있어, 우리 자신의 미래를 일일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至今, 현재現在 각자各自 자신이 먹은 음식과,
지금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드러내어 펼친 것이, 훗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過去 혹은, 미래未來라 부르는 시공간은 현재現在라 부르는 자신만의 시공간時空間, 그 지금至今의 연속성連續性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라 하는 것은 단순히 무엇을 많이 알고 있는 지식知識, 그것을 지혜智慧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하는 때와, 자신을 멈추어야 하는 때, 그 때를 아는 것을 지혜라 합니다. 지혜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 자신의 삶에 경험으로 올바르게 스며들어, 자신의 삶에 그대로 표출이 될 때, 그것을 일러 지혜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하는 때와, 멈추어야 하는 그 때는, 오직 자신만이 알아 낼 수 있으며,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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