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지금 창밖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네요. 아마 늦봄이 자신의 마지막 수채화를
빗방울로 공들여 그리고 있나 봅니다.
빗물로 그리는 봄의 수채화가 멈추고 나면
세상이란 넓디 넓은 도화지엔 또 다른 풍경들로 가득하겠지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빗줄기로 풍경화를 그리면서 우리 곁을 이제 떠난다고 속삭이는군요.
광부鑛夫 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오면, 너른 들녘에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피어오르듯, 여기저기에서 새싹들도 솟아오르며, 온 천지에서 만물萬物들이 꿈틀대는 생동감으로 인해, 우리 가슴도 괜스레 덩달아 설레어지기도 합니다.
봄…!, 봄을 뜻하는 봄 춘春은 무슨 뜻이며, 가을을 뜻하는 가을 추秋는 과연 무슨 뜻일까요?! 봄은 큰 대大와 거듭 이二, 다를 이二이란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진 근원 춘( )이라는 문자와 해 일日로 알고 있는 밝힐 일日이란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움직일 준春, 봄 춘春, 근원根源 춘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움직일 준春, 봄 춘春, 근원根源 춘春이라는 문자 속에는, "스스로 거듭 움직여 이치로써 그 근원을 밝힌다." 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봄이란, 사물이나 현상 등이 비롯되는 본바탕이란 뜻을 지닌 근원根源의 뜻처럼,
겨우내 자신의 본 모습을 땅속에 감추고 숨어있던 각종 씨앗들이 싹을 틔워, 자신들의 모습은 이러하다고, 서로 각기 다른 자신의 참 모습을 스스로 드러냄을 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참 모습인 그 근원根源이 어떠한 모습인지 땅 위로 스스로 드러내 보인다고 하여, 봄이라고 합니다.
봄은 다른 계절에 비하여 유난히 안개가 자주 끼며 짙은 안개가 더 자주 끼는데, 그 이유는 봄은 모든 만물을 생육生育 번성시키는 계절季節이기에 바다에서 영양이 가득 담긴 미네랄을 안개로 만들어 자연의 모든 동, 식물에게 골고루 영양분을 공급하느라,
다른 계절에 비해 안개가 더 자주 끼는 것이며, 강물도 다른 계절에 비하여 유난히 더 뿌옇고, 하늘도 더 뿌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봄에는 바람도 강풍이 아닌, 바람이 부는 듯 마는 듯 하는 미풍微風으로 바람이 부는데,
그 이유는 씨앗에서 갓 나온 새싹들에 어울리게 바람이 미풍으로 부는 것이며, 비도 이슬처럼 촉촉한 이슬비나 보드라운 보슬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싹이 점점 자라면 자랄수록 비바람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다가 꽃이 필 무렵에는 다시 약해지고,
식물이 열매를 맺을 때면 다시 비바람이 약해지고,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는 여름에는 열매가 자라면 자랄수록 빗줄기와 바람의 강도도 점점 강해지다가, 열매熱媒가 알차게 영그는 가을이 되면, 큰 태풍颱風으로 다음 해에 씨앗이 될 수 없는 열매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하여,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풍요로운 계절이라고 흔히 그렇게 알고 있으나, 가을엔 추수가 끝나서 다른 계절에 비하여 더 풍요롭긴 하지만, 가을은 모든 만물의 생육 번성이 끝나서 더 이상 자연에서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기에 하늘이 다른 계절에 비하여, 유난히 더 맑고 푸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어린 유아幼兒 시절을 계절에 비유하여 인생의 봄이라고 비유를 하는데, 아기를 낳은 엄마의 젖은 물론, 모든 포유류 어미의 젖이 뿌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기나 동물의 새끼가 점점 자라나 젖을 떼는 시기인 가을이 오면 어미젖의 농도도 점점 옅어지면서 젖이 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가을이 지나면, 겨울에는 겨울의 매서운 추위로 인해 모든 만물은 잔뜩 움츠러드는데, 이는 단지 추워서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잔뜩 움츠린 개구리가 높이 멀리 뛸 수 있듯이 모든 만물은 겨울 동안, 다가올 봄에 대비해 더 높이 더 멀리 자신을 펼치기 위하여 힘을 비축하느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입니다.
봄에는 안개가 자주 끼지만 겨울에도 안개가 끼고 겨울에 비보다 눈이 내리는 이유는 눈 설雪이라는 문자는 내릴 우雨와 이치 계彐라는 문자로 이루어져, 눈 설雪, 덮을 설雪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덮을 설雪이라는 문자의 뜻처럼,
자연은 겨울 동안 바다로부터 영양분이 가득 담긴 미네랄을 안개로 만들어 산과 들녘의 모든 생명에게 영양분을 공급한 후, 다가 올 봄을 대비하여, 천천히 오랫동안 땅에 영양분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눈으로 영양분을 덮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육지의 동식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안개가 낄 때는 바람이 거의 없으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다음 해는 풍년이 드는 반면, 비가 내리면 보통 흉작이 드는데, 그런 이유는 눈은 땅에 영양분이 골고루 스며들도록, 눈으로 영양분을 덮어놓지만 비는 영양분을 씻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다음 해는 풍년이 들고, 겨울에 눈이나 비가 자주 내리지 않으면 평작, 겨울에 비가 내리는 다음 해는 대부분 흉년凶年이 드는데,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드는 이유는 그해 흉작이 되는 동, 식물은 인간이 많이 먹지 않아도 되기에 자연自然이 그런 동식물을 흉작이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아! 춘하추동春夏秋冬이라 하는 계절은 일 년에도 춘하추동이 있지만 하루에도 춘하추동이 있으며, 봄이란 계절에서도 다시 춘하추동이 있으며, 여름과, 가을, 겨울에도 각각 춘하추동이 있으며, 동물과 식물에 따라 춘하추동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계를 뜻하는 계절季節의 하나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나, 계절季節이란, 문자의 계季는 계절 계季, 시절時節 계季, 끝 계季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계절 계季는 우리가 곡식의 벼로 알고 있는 벼 화禾, 본질本質 화禾와 깨달을 자子라는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질本質 화禾는 이치 목木과 움직일 별( )이란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이치로 움직인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여, 계절季節의 계季란 문자 속에는 "본질을 깨달아 움직여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뜻하는 계절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동, 식물은 물론 우리 인간도 각자 자신의 본질本質을 깨달아 자신의 본질 내에서 움직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계절季節의 절節은 마디 절節, 시기 절節, 규칙 절節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마디 절節, 시기 절節이란 문자는 대나무를 뜻하는 대 죽竹으로 알고 있는 밝힐 죽竹과 곧 즉卽, 이제 즉卽이란 뜻을 지닌 문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곧 즉卽, 이제 즉卽이라는 문자는 밝힐 백白과 바꿀 비匕, 그리고 부수 병부절卩로 알고 있는 힘써 세울 절卩이란 문자로 이루어져, 이치로 힘써 자신을 바꾸라는 뜻이 들어 있으며, 절節이란 문자 속에는 "이제 바르게 바꾸어 세우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여, 계절季節이란 문자에는 자신의 본질本質,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세균이면 세균, 사람이면 사람, 각자 자신의 본질을 깨달아 자신의 본질을 이치로 거듭 힘써 자신의 본질을 거듭 바르게 바꾸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 식물이든, 사람이든, 미생물이든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은 그 계절, 그 계절이 지나고 있는 동안에 자신의 본질을 바르게 깨달아 자신을 바르게 바꾸어 자신을 진화시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봄에 태어나야 하는 동, 식물이 겨울에 태어나면 안 되며, 봄에 싹을 틔워 여름에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에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식물이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식물은 계절이 지니는 뜻에 어긋난, 철이 안 든 식물이기에 계절 계季, 끝 계季라는 그 뜻처럼, 스스로 도태가 되어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가을은 문자로 표기하면 가을可乙입니다. 가을可乙의 가可는 옳을 가可, 바를 가可, 인정할 가可, 수긍할 가可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힘써 펼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힘써 펼치니 그것을 옳다고 하는 것이며, 인정하며, 수긍한다는 뜻의 인정할 가可, 수긍할 가可이며, 가을可乙의 을은 잘 아시다시피 새 을乙, 고칠 을乙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새 을乙은 흔히 날아다니는 하늘의 새로 알고 있으나,
새 을乙은 무언가를 바르게 고치니, 새롭다는 뜻의 새 을乙입니다. 자신을 새롭게 고치려면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해야만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도 모르면, 자신의 잘못을 끝내 영원히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을可乙 추秋의 추秋는 본질 화禾와 불 화火로 알고 있는 바꿀 화火로 이루어져, 추秋에는 '본질을 바꾸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겨우내 땅 속에 웅크리고 있던 씨앗이 봄에 싹을 틔워 여름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에 열매熱媒를 맺는 것으로 그 본질이 새롭게 바뀐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늘 자신의 본질을 이치로 거듭 새롭게 바꾸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알버트 아인쉬타인' 이 그랬다지요. "어제 같은 오늘을 살면서,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고 말이죠.
사람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아 자신의 본바탕인 본질을 올바르게 바꾸지 않으면, 어제보다 더 나은 진화를 할 수 없는 것이며,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대자연에서 스스로 도태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은 계절季節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난 해 자신의 실패나, 잘못을 경험한 것을 거울삼아 지난해보다는 올해 더 진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절을 다른 말로는 철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계절季節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으며 무언가를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철이 들고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절, 한 해 한 해 철이 지날수록 무엇을 경험하여 잘못된 점을 느끼면 그 잘못을 고치고 개선을 하여 스스로 바르게 진화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잘못에 잘못을 거듭하여 퇴화退化에 퇴화를 거듭하게 되면, 이 대자연에서 스스로 도태되고 마는 것입니다.
봄에는 근원 춘春, 봄 춘春이 뜻하듯 자신의 근원을 드러내어 계절의 계季의 뜻처럼, 자신의 근원을 이치로 여름 내 무럭무럭 성장하여, 가을可乙에는 자신의 본질, 그 근원을 옳고, 바르게 고쳐 자신의 본질本質인 열매를 참되게 맺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다음 해를 대비하여 힘을 비축하고, 봄에는 다시 자신의 근원根原인, 씨氏에서 싹을 틔워 바르게 깨달아 무럭무럭 자라서 참되게 열매를 맺어 다음 해에 더 나은 씨를 뿌려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진화進化가 가지고 있는 참뜻이며, 계절季節이 지니고 있는 참뜻인 것입니다. 병든 씨앗이나 덜 익은 열매는 다음 해 봄에 싹을 틔우지 못하거나 병든 싹이 태어나게 되거나 열매를 맺어도 병든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이처럼 사람도 병이 든 채, 생을 마감하거나 깨우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면 어찌 되겠는지요?! 그리고 다음 생生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사람도 식물처럼 병이 든 채 태어나게 되거나, 태어나도 어리석게 태어나게 되거나 다시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든 깨달은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아니면 악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지위가 높던 지위가 낮던 지닌, 부자이던 가난한 사람이든,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각자 지금 자신의 모습은 이번 한 번의 생에 걸쳐 그 모습을 이룬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억겁億劫의 세월 동안 수많은 생을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대 우주의 철칙鐵則(변경하거나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이자 원칙)은 지금 자신의 현재 모습보다 더 뛰어난 내일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지, 퇴화에 퇴화를 거듭하여 자연에서 도태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는 청정淸淨은 우리나라 동양의 수數에서, 나누는 수數의 하나로, 인간이면 누구나 그 청정淸淨에 도달해야 한다고 하며, 청정은 나누는 수의 마지막 수數라고 합니다.
일一 즉, 하나를 열로 나눈 것을 할割이라 하며, 일을 백百으로 나눈 것을 푼分이라 하며, 일을 천千으로 나눈 것을 리厘이라 하며, 일을 만萬으로 나눈 것을 모毛라 하며,
일을 십만十萬으로 나눈 것을 사絲라 하며, 일을 백만百萬으로 나눈 것을 홀忽이라 하며, 일을 천만千萬으로 나눈 것을 미微라 하며, 일을 일억一億으로 나눈 것을 섬纖이라 하며, 일을 십억十億으로 나눈 것을 사沙라 하며, 일을 백억百億으로 나눈 것을 진塵이라 하며,
일을 천억千億으로 나눈 것을 애埃라 하며, 일을 일조一兆로 나눈 것을 묘渺라 하며, 일을 십조十兆로를 나눈 것을 막漠이라 하며, 일을 백조百兆로 나눈 것을 모호模糊라 하며, 일을 천조千兆로 나눈 것을 준순逡巡이라 하며, 일을 일경一京으로 나눈 것을 수유須臾라 하며,
일을 백경百京으로 나눈 것을 순식瞬息이라 하며, 일을 천경千京으로 나눈 것을 탄지彈指라 하며, 일을 일해一垓로 나눈 것을 찰나刹那라 하며…,이 찰나刹那를 열로 나눈 것을 육덕六德이라 하며,
이 육덕六德을 다시 열로 나누면, 비로소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는 허공虛空에 도달하며, 이 허공虛空을 다시 열로 나누면, 우리가 깨끗하다고 할 때 표현하는 청정淸淨, 그 마지막 수數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을 얘기할 때 흔히 쓰는 순식간이라고 하는 순간, 순식瞬息은 백경 분의 일 초입니다. 순식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이제 짐작이 가십니까?! 그런데, 청정淸淨, 청정은 그보다도 더 짧은 시간입니다.
우리 자신이 가끔 깨끗하게 살아야지 라고, 마음먹는 순간이 얼마나 짧은지 이제 조금은 알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청정淸淨은 인간이면 누구나 도달해야 하는 마지막 수數라고 하는데, 수많은 계절이 지나는 동안에도 끝내 청정淸淨해지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로 대 우주에서 영원히 도태淘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누가 자신을 도태를 시키냐구요?! 그야 자신이 자신을 도태시키는 것이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란, 계절季節의 참뜻을 모르는 자신이 말입니다.
땅속에서 겨우내 자신의 참 모습을 숨기고 겨우내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봄이 되면 각종 씨앗들이 싹을 틔워서 스스로 본디 참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근원은 본디 이렇다고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자신의 참모습을 주위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일러 다른 말로 취준驟峻이라 합니다.
봄이 오면 씨앗들이 싹을 틔워 자신의 참모습이 이러함을 스스로 드러내듯, 즉, 평소엔 자신의 악한 본 모습을 철저히 숨기고서, 주위에 착하고 어질고 바른 행동으로 늘 선善을 행하여,
높은 명망名望으로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고 있으나, 숨기고 있던 자신의 본래의 그 목적을 이룰 시기가 되면 그동안 양의 탈을 쓰고 꼭꼭 감추어 두었던, 본디 자신의 악한 참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일러 취준驟峻이라 합니다.
평소에 늘 어질고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악을 짓고 악을 행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다만 주위에 그동안 자신이 착한 척, 어진 척, 친한 척, 친구인 척, 동료인 척, 나쁜 사람이 아닌 척으로 위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원래 목적을 이룰 시기가 되면, 그동안 철저하게 선善으로 위장하고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악惡, 자신의 본디 참모습인 악惡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을 일러 취준驟峻이라 합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아무리 바쁘고, 때론 삶이 자신을 속일지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시간을 한 번 가져 보심이 어떠실런지요?! 늘 바르게 변하는 것! 그것은 타인을 위함이 아닌, 자신을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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